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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년간 나라를 잃었던 폴란드 - 윤영관

역사에는 국제 정치의 판을 정확히 읽어내고 대응하는데 실패해서 희생당한 약소국이 수없이 많다. 단적인 예로 강대국들에 의해 네 차례 분할되고 점령당한 끝에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를 들 수 있다. 원래 폴란드는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수립한 이후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고 절정의 국력을 과시하던 중부 유럽의 강국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 이래 수많은 전쟁과 국내적 혼란을 겪으며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폴란드는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라는 세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지속적으로 서쪽으로 세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는 이에 위협을 느껴 러시아와 전쟁을 불사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프로이센은 전쟁의 불꽃이 자국에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나라의 세력 경쟁이 폴란드 땅에서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애석하게도 폴란드는 국가적 위기가 임박한 순간까지 주변 국가들의 의도나 국제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고 현명한 외교 노선을 채택하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폴란드는 내부 분열에 휩싸여 외국 세력에게 자국을 침공할 단초를 제공했다. 세 강대국은 폴란드의 영토를 각각 나누어 차지함으로써 세력 경쟁을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폴란드는 내란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토가 황폐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린 끝에 1772년 영토의 3분의 1을 강탈당하고 말았다(1차 분할).

그로부터 20년 후 폴란드의 지도층은 국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이것이 또 하나의 빌미가 되었다. 국내의 보수파는 그에 반발해 내부 투쟁을 벌이며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했고, 러시아가 움직이자 프로이센도 군대를 파견했다. 헌법을 가결했던 폴란드 의회는 외국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다. 이는 마치 구한말 동학 혁명 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 전쟁의 상황과도 비슷했다. 결국 1793년 폴란드는 남은 영토의 절반마저 또다시 빼앗기고 말았다(2차 분할).

2차 분할 이후 분노한 폴란드 국민들은 전국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주변 삼국은 오히려 이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폴란드에 군대를 파견했고, 폴란드는 이들 군대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하고 말았다. 1795년 세 강대국은 폴란드의 남은 영토마저 분할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123년 동안 폴란드는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렸다(3차 분할).

1918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폴란드는 잃었던 주권을 회복하고 나라를 되찾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흥정의 대상이 되어 다시 한 번 희생되었다. 19399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했고 이어서 917일 소련군이 동쪽에서 쳐들어 왔다. 같은 달 27일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됨으로써 또다시 지도에서 사라졌다(4차 분할).

비록 2차 세계대전 후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폴란드가 겪은 이 질곡의 역사는 약소국과 중위권 국가에서 큰 교훈을 던져준다. 물론 경제적 상호의존과 세계화가 심화된 오늘날 21세기에 그와 같은 적나라한 영토 쟁탈전은 드물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과 같은 일이 엄연히 벌어지고 있고, 동아시아에서도 여러 영토 분쟁이 목전에서 진행 중이다. 오늘날에도 지정학적, 전략적 고려는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처럼 지정학적 요충에 있는 국가가 대국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욱 눈을 부릅뜨고 국제정세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단합하여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전략과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 윤영관, <외교의 시대> 27-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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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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