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124)은 중국 한나라 때의 문인이다. 그는 독서를 폭넓게 해서 ‘관서의 공자’(關西孔子)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문명을 날렸다. 그가 동래지방 태수로 있을 때, 대장군 등척이 자신의 아들을 천거해 달라며 왕밀을 통해서 황금 열 냥의 거금을 뇌물로 가져왔다. 한밤중에 양진과 단둘이 만난 왕밀은 “한밤중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며 뇌물을 받을 것을 권했다. 그러자 양진은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해서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느냐”(天知, 神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라고 꾸짖으며 뇌물 받기를 거절하고 왕밀을 쫓아냈다.(<후한서> 중 ‘양진열전’)
양진은 그 뒤로도 어떤 권력자에게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나라의 폐단을 바로잡으라는 상소를 계속 올려 결국 벽지 지방관으로 거듭 좌천당했다. 또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권귀들의 눈 밖에 나서 연거푸 탄핵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스스로 짐독을 먹고 자살함으로써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뇌물을 거절하면서 남긴 여덟 글자 ‘천지(天知),신지(神知),아지(我知),자지(子知)’는 오늘날까지도 천고의 명언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 이상수 칼럼(한겨례 2022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