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을 남긴 토정 이지함 선생이 조선 선조 때 포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왕에게 올린 상소문을 찾았다. 그 내용은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20여 년 전에 포천현에 살았던 서민들의 처참한 생활상, 너무도 궁핍한 지역경제의 모습, 이에 대한 토정의 기발한 구휼 대천 건의 내용을 상소문은 담고 있었다. 그 밖의 내용 중 잊히지 않는 인재등용에 관한 왕에게의 진언 내용은 명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인재가 있을 것입니다. 조정은 뭇 어진이가 모이는 곳입니다. 다만, 해동청(海東靑) 보라매는 천하제일의 매이지만 그에게 새벽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 못할 것이며, 한혈구(汗血駒)는 천하의 좋은 말이지만 그로 하여금 쥐를 잡게 한다면 늙은 고양이만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닭이 사냥을 할 수 있겠으며 고양이가 수레를 끌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이 한다면, 이 네 가지 동물은 다 천하의 버린 물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토정 선생이 인재등용에 있어서 적재적소(適材適所)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부분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이와 더불어 나는 인재등용에 있어 또 다른 철학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임인유현’(任人唯賢, 인품과 능력만을 믿고 사람을 등용)의 능력위주(能力爲主) 인사 원칙이다. ‘인사가 만사(萬事)’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상 모든 군주나 대통령은 인사를 할 때 능력 우선이냐, 아니면 개인적인 충성 우선이냐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치세(治世)에는 ‘임인유친’(任人唯親, 능력과는 관계없이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만 임용)의 인사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난세(亂世)에는 무엇보다 ‘임인유현’의 인사를 해야 한다. 국가가 항시 안보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겠다.
‘임인유친’의 코드인사, 편중인사, 보은인사, 정실인사가 심화된 경우 국가는 쇠망하고, 그 지도자도 불행하게 끝난 일이 다반사인 것은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치의 세계는 일면관(一面觀)에 치우치면 안 된다. 활인(活人)의 도(道)와 포덕(布德)의 정치를 펴야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한동, <정치는 중업이다-이한동 회고록>, 승연사, 2018., 161-1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