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법조언론인클럽과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주최한 토론회 제목은 ‘박근혜정부 출범 1주년과 법치주의’였다. 나는 ‘인권과 공공질서의 조화’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했다.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질서를 이유로 법률로써 개인의 인권을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 이는 법률가에게도 참으로 어려운 주제다. 인권과 공공질서 중 어느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
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형자에게도 선거권을 주어야 하는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금고 이상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수형자에게는 선거권이 없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그랬다. 공공질서를 해친 중(重) 범죄자의 발언권을 박탈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법질서에 대한 존중을 강화하고자 함이다. 공민(公民)으로서의 책임의식이 부족한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형자와 어린이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주체로 인정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부터 그러했다. 일종의 ‘시민 지위 박탈(civil death)’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2004년과 2009년에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 헌재는 올 1월 28일 돌연 입장을 바꾸어 수형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다만 2015년 말까지 현행법의 잠정적용을 명했다. 앞으로 국회가 장기형 복역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선거권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때부터 단기형 수형자도 선거권이 있다.
나는 위 토론회에서 헌재의 결정이 자유주의적 입장에만 경도되어 우리 헌법의 공화주의적 입장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나의 발표는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단견이었다. 지난 6·4지방선거부터 전국 단위로 처음 시행한 ‘사전투표제’를 보고 나는 이제 생각을 바꾸었다. 유권자들은 선거 전에 미리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선거구의 투표용지를 어느 곳에서나 출력하여 투표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전국 어디서든 사전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에 교도소의 수형자도 수형시설 안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헌재가 종전 판례를 변경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석된다. 선관위의 최첨단 선거 시스템이 수십 년 만에 수형자의 선거권을 찾아준 것이다. ICT의 발전에 따라 법률·제도·판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는 인구편차 상하 50%(3:1)를 기준으로 획정되어 있다. 그런데 헌재는 2001년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인구 편차가 상하 33.3%(2:1)의 기준에 따라 위헌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2000헌마92·240). 헌재는 현행 3:1 선거구의 위헌 여부에 대해 2013년 9월 13일에 이미 공개변론까지 마치고 결정을 앞두고 있다(2012헌마325). 이 사건 변론에서 중앙선관위도 2:1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제20대 총선에서 농어촌 선거구 수는 대폭 줄어든다.
나는 주민등록 인구편차 2:1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선거구의 위헌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헌재의 논리에 반대한다.
첫째, 주민등록 인구 비례로 하면 도시지역의 선거구가 늘어나고 농어촌지역은 대폭 줄어들게 되어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 약화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대도시에서는 1개 자치구에서 최대 3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반면, 농촌에서는 광대한 지역의 4개 기초자치단체에서 1명을 뽑는 경우도 생긴다. 국회의원은 지방의원과 달리 전체국민의 대표다. 주민등록인구만을 기준으로 수도권이 과대 대표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민법 제18조는 주소란 ‘생활의 근거 되는 곳’이라고 정의하면서, ‘주소는 동시에 두 곳 이상 있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두 곳을 오가면서 생활하는 사람은 민법상 주소가 두 곳이다. 그 중 한 곳에 편의상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등록은 행정목적을 위한 하나의 편의장치일 뿐이다.
공직선거법 제25조 제1항은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기타 조건’을 고려하여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인구’는 주민등록인구만을 말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등록기준지(본적) 인구’도 인구다. 적어도 ‘기타 조건’에는 들어가야 한다. 주민등록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역사·면적·등록기준지·출생지 등의 다른 조건도 함께 고려해야 마땅하다. 주민등록인구만을 기준으로 위헌성 판단을 하는 것은 등록기준지 제도가 별도로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다.
셋째, 유권자에게 선거구 선택권을 주는 방향도 모색되어야 한다. 요즘 선거에서 기권자도 많은데, 주민등록지·등록기준지·출생지 중에서 아예 유권자가 신청을 하여 만든 가칭 ‘선거적(選擧籍)’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출생지·등록기준지·주민등록지가 모두 전산화되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사전투표도 가능해져서 어디에 생활의 근거되는 곳(주소)을 두고 있든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게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선진화된 ICT 발전의 뒷받침을 받은 한국형 선거제도를 통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주민등록인구만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도농 간 선거구를 둘러싼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선거웹진 2014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