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힘이 세다. 때로 말과 글은 권력과 재산보다도 영향력이 있어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 될 수도 있지만, 한마디 말과 글로써 남을 베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말과 글은 성공과 실패를 넘나드는 양날의 칼이다. ‘귀태(鬼胎)’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정국이 얼어붙을 정도로, 한마디 말이 세상을 멍들게도 한다[一言傷世]. 세상을 태우는 불이 되기도 한다.
말과 글로써 먹고 사는 법조인에게서랴. 법조인의 직업적인 말과 글은 공방(攻防)의 무기이자 설득의 기술이다. 정확한 법률용어와 탁월한 논리, 그리고 유려한 문장력을 갖춘 판결문, 공소장, 준비서면, 변론요지서를 완성하게 위해 숱한 밤을 지새운다. 말과 글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극한대립이 일상화된 정치권의 영향인지, 요즘 법조계의 말과 글도 너무 날카롭고 험구(險口)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법 판단에 대해 정상적인 불복방법을 취하기도 전에 즉각 반발하는 말과 글이 난무하고, 사건을 법정 바깥으로 집어던져 광장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변호사는 상대방의 준비서면 부본을 받으면 그 어떤 공격과 방어의 방법, 어떤 예리한 주장이 들어 있는지부터 궁금해진다. 그런데 내 주장의 논리적 모순과 부당성을 지적하는 내용에 숨죽이게 되는 것이야 상대방의 유능함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일 테지만, 폐부를 찌르는 비수와도 같은 섬뜩한 표현이 눈에 띌 때면 정말 기분이 우울해진다.
아무리 부당한 주장이라 해도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허위 주장”, “터무니없는 주장”, “곡해하여 주장”, “억지 주장”, “실로 근거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고 함부로 매도해도 되는가. 가장 상처 받았던 표현은 나의 주장이 “무지(無知)의 소치”라고 일갈 당한 경우였다. 졸지에 무식한 변호사로 전락하였다. 그밖에도 ‘무문왕법’ ‘무문농법’ ‘돈벌이를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글로써 살인까지 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우리 법조인들이 서로 독을 머금은 화살과 같은 말과 글로써 이렇게 상대방을 베어서야 되겠는가.
주장의 내용은 예리하되, 그 표현은 점잖아야 한다. 말과 글은 결국 내 마음의 표현이므로 바른 마음에서 바른 말과 바른 글이 나오는 법이다. 판결문이 법관의 얼굴이듯이, 법정에 공식적으로 내는 준비서면은 변호사나 그가 속한 법무법인의 얼굴이자 자존심이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어떤 얼굴 표정을 하고 나타나 어떤 인상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너무나 자명하다. 성경에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Reckless words pierce like a sword, but the tongue of the wise brings healing).[잠언 12:18]”라고 했다. 말과 글은 날카로운 칼이로되, 겸손과 절제의 칼집에 들어 있어야 함부로 남을 베지 않는다. 법조인으로서의 품격과 상호간의 예의 및 선비로서의 금도(襟度)가 절실한 때다. (법률신문 2013. 7. 18.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