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주식시세표를 보고 있으면 황당할 때가 많다. 회사 이름만 보고는 무슨 업(業)을 하는 기업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장사는 그나마 업종별로 분류라도 되어 있다. 하지만 코스닥 상장사는 대부분 검색해 보지 않고서는 그 회사의 주요 목적사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루멘스’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현행법에서는 ‘주식회사 루멘스’라고만 등기하면 된다. 그런데 루멘스가 코스닥 상장사인 것은 알겠지만 국내 굴지의 LED기업인지는 일반인은 알 길이 없다. ‘동양제철화학’은 이제 ‘오씨아이(OCI)’로 바뀌었다. ‘이원(E1)'도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알 수가 없다. 신문에서 ‘액화천연가스(LPG) 전문기업 E1’이라고 긴 수식어를 상호 앞에 달아주어야 알 수가 있다.
회사의 상호를 지어 등기할 때에도 사람의 이름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할 때처럼 일정한 규율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할 때에는 본(本)과 성(姓)과 이름을 함께 신고해야 하고, 이름은 한글 또는 통상 사용되는 한자를 써야 한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사람 이름에 쓰는 한자는 대법원규칙에 정해진 것만 허용된다.
그런데 회사의 이름에는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책임회사, 주식회사, 유한회사만 붙이면 ‘상호선정(商號選定)의 자유’가 보장된다(상법 제18조, 제19조). 다만 대법원예규에 따라 회사의 이름은 한글 또는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로 등기하여야 하고, 아라비아숫자만으로는 등기할 수 없다. 그러니 ‘주식회사 777’은 등기할 수 없다. 그리고 현행법상 금융투자업자가 아니면 아무나 회사 이름에 ‘증권’, ‘선물’, ‘투자신탁’, ‘자산운용’, ‘신탁’ 등과 같은 문자를 쓸 수 없다. 이런 특권은 ‘은행’도 누린다. 은행은 상호에 ‘은행’ 자를 반드시 넣어야 하고, 은행이 아닌 회사는 ‘은행’ 자를 쓰지 못한다. 금융지주회사가 아닌 회사는 상호에 ‘금융지주회사’ 문자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자유롭게 회사의 상호를 정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규칙도 없이 마음대로 달랑 ‘고유명사’만 내세우거나 ‘영문 이니셜’이나 기호로만 상호를 짓기도 한다. 물론 개성의 시대이고 다양성의 시대다. 하지만 적어도 이름이란 자신을 남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하나의 ‘간판’을 세상에 내거는 신호다. 특히 회사란 이익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상호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름’ 하나만으로 그 회사가 정체를 드러낼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도 있다. 하지만 상호만으로 무슨 업(業)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 회사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호는 고객과 국민들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자기홍보다.
‘LPG’란 말을 빼고 ‘이원(E1)’이라고만 상호를 쓴다면 그것은 사람의 성명에서 성(姓)을 빼고 이름만 쓰는 격이 될 것이다. 자고로 사람의 성명에서 성(姓)이란 자신의 출생의 근원이다. 가문의 뿌리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지(標識)가 된다. 성도 없이 이름이라 할 수 있을까?
2013년 포천(Fortune) 500대 기업 중 우리나라 회사는 14개다. 삼성전자, 에스케이홀딩스,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엘지전자, 한국전력공사, 지에스칼텍스, 기아자동차, 한국가스공사, 에쓰데시오일, 현대모비스, 삼성생명보험, 엘지디스플레이가 자랑스러운 주인공이다. 대부분 사업목적이 상호에 들어가 있지만, 포스코, 지에스칼텍스, 현대모비스는 그렇지 않다.
상호등기제도를 현재처럼 방임할 것인가? 상호등기의 공시(公示) 기능을 강화하고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공공적 측면을 감안하여, 상장회사만이라도 상호에 주요 목적사업 관련 문구를 넣도록 하여야 한다. 상호는 어느 회사를 다른 회사로부터 식별하는 표지이다. 동시에 이를 기초로 사회적 관계와 신뢰가 형성되는 등 고도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사업을 표방하지 않은 회사 상호는 마치 요즘 유행처럼 성(姓)을 버리고 이름 한 두 글자로 지은 연예인의 예명과 같다. 사람이든 회사든 경제주체로서 활동하는 이상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 ‘인’(人)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상호를 자유롭게 지어서 예명처럼 약칭으로 불러도 좋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법인등기를 할 때의 공식 이름에는 합리적인 제한이 있어야 한다. (중앙SUNDAY 2013. 10. 2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