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미국에서 사법에 의한 입법(judicial legislation)이 문제 되었다. 낙태에 대해서는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보는 입장(pro-choice)과 태아의 생명권 문제로 보는 입장(pro-life)으로 나뉘는데, 연방대법원은 1973년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텍사스 주 법률에 대해 7 대 2로 임신 후 3개월까지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유명한 로우 대 웨이드 사건이다. 낙태를 어느 시점부터 금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형적인 입법의 영역이다. 사법부가 법률에다 3개월이라는 경계선을 그어넣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다수의견이 3개월의 경계를 정한 것에 대한 반대의견의 비판은 참 신랄하다.
“다수의견은 헌법의 원래 의도보다 더 깊숙이 사법부가 개입하여 스스로 법률을 만드는 입법부의 흉내를 낸 것처럼 보인다.”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중 일부다. 그런데 법전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은 밤 12시를 경계로 달리 적용된다. 헌법재판소가 올 3월 27일과 4월 24일에 ‘밤 12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결정을 선고하였기 때문이다(2012헌가2,13 및 2011헌가29). 대법원은 7월 10일 헌재의 결정을 그 주문의 표현 형식에도 불구하고 ‘일부 위헌의 취지’로 해석해 밤 12시까지의 야간 시위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2011도1602). 헌재의 헌법불합치결정을 위헌결정으로 해석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8도7562)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밤 12시까지의 야간 시위는 과거 것도 모두 무죄다.
그러나 앞면에 시위의 자유가 있다면, 뒷면에는 공공의 안녕질서와 사생활의 평온이라는 법익이 엄연히 존재한다. 양자를 조화시키는 경계를 찾아 법조문에 집어넣는 일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몫이다. 밤 9시나 10시로 정하자는 견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의 3인 소수의견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그 경계를 특정하는 것은 사실상 입법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이는 입법권에 대한 침해로서 권력분립의 원칙과 충돌할 여지가 많다.”
미국 대법원의 반대의견보다는 점잖다.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지만 종종 각운(脚韻)이 맞는 경우가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 생각난다.
‘황제노역방지법’이라는 개정 형법 제70조 제2항은 입법에 의한 사법이다. 벌금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은 300일 이상,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은 1000일 이상 환형유치 선고를 하도록 강제했다. 여론에 편승한 과잉·졸속입법이다. 법원이 양형기준으로나 정할 것을 입법화하였다. 입법만능주의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2013년 7월 12일 개정된 ‘부동산실명법’은 종교단체의 명의신탁을 특례로 허용하면서 이 개정 규정을 최초 법률 시행일 1995년 7월 1일로 소급 적용한다는 부칙까지 둠으로써 계류 중인 소송사건을 일거에 해결하였다. 국민 전체이익이 아닌 부분이익을 앞세운, 용감한 처분적 입법도 입법에 의한 사법이다. 사법입법도 입법사법도 헌법이 애당초 의도한 것은 아니다. (법률신문 2014. 7. 21.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