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늘 ‘오늘의 재판안내’를 훑어본다. 번지수가 틀리지는 않았는지, 내 사건에 얼마의 변론시간이 배정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어느 날, 형사합의재판을 받으러 갔는데, 죄명이 온통 도로교통법위반이다. 법정을 잘못 찾아왔나 다시 확인해보니 도로교통법이 개정돼 그렇단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음주운전 재판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재판부를 지켜보았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다고 국회의원들이 나섰다. 2011년 12월 9일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상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 3회 이상 음주운전 및 측정거부의 경우 징역형에 하한 1년을 두었다. 취지는 좋은데, 그렇게 개정하면 법원조직법상 합의부 관할이 되는 것을 간과했다. 법관 셋이 재판할 거리도 아닌 도로교통법 사건이 난데없이 합의사건이 되었다. 더 중한 뺑소니치사죄도 이미 20년 전부터 단독사건인데 말이다.
2012년 상반기 합의사건은 전년 동기 대비 56.8%나 늘어났다. 도로교통법 사건이 27.5%를 차지하게 되었다. 법조문 하나 잘못 고치면 이렇게 홍역을 앓게 된다. 법을 개정할 때 기본적인 법체계 하나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다니 어처구니없다. 2012년 12월 18일 법원조직법 제32조 제1항 제3호 단서에 (아)목을 신설하여 위 세 가지를 단독화 하면서 혼란은 1년 만에 수습되었다. 국민의 세금만 낭비된 셈이다.
정부법률안의 경우는 소관 부처의 입안,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 층층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기에 그런 실수가 적다. 그런 절차가 부족한 의원법률안에서 종종 실수가 생긴다. 근본적으로는 국회의 심사 내실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작용 중 입법작용의 중요성에 비추어 입법절차에서 민주주의·법치주의 원칙과 적법절차 원리가 구현되어야 한다. 법률안 입안과 제출, 법률안의 심의·의결, 법률안 재의요구·공포 등 입법의 전 과정 전체를 규율하는 가칭 ‘입법절차법’도 마련돼야 한다. 의원법률안에 대한 입법영향평가 의무화도 중요하다. 심의 과정에서 위헌성과 법체계 정합성 등의 심사 강화를 위해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입법자문위원회를 두거나 헌법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두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매년 5천여 건씩이나 발의되는 의원입법의 품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에 대해 법조계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회법이 개정되어 의원법률안도 지금은 입법예고가 되고 있다. 입법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법률 제대로 만들기 운동을 펼치는 대한변협이 적극 나서야 한다. 국회 홈페이지의 입법예고 란을 모니터링하면서 수시로 입법의견을 개진하였으면 한다. 입법 바로 세우기 운동을 통한 입법참여와 입법감시야말로 법률전문가단체가 국민을 위해 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다. 부실·졸속입법으로 인한 폐해와 혼란을 막기 위해 변협이 사전에 움직여야 한다.
잘못된 판결이 국민들에게 끼치는 해악이 열 배라면 잘못된 입법은 천 배의 해악을 끼친다는 명언이 나온 이유를 되새겨 볼 때다. (법률신문 2014. 9. 29.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