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사람과 내려가려는 사람이 서로 양보 없이 마주쳐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교착상태가 바로 ‘데드락’(deadlock)이다. 상법 제520조에서는 법률가에게도 낯선 용어이지만 ‘정돈상태’라고 한다. ‘정리정돈’의 그 ‘정돈(整頓)’이 아니라 ‘정돈(停頓)’이다.
두 명이 50%씩 투자하여 주식회사를 차렸다고 치자. 회사경영의 목표와 이상을 공유하면서 함께 사다리를 올라갈 때는 동업체가 잘 굴러간다. 그러나 사이가 틀어지면 회사가 마비된다. 이것이 바로 정돈상태다. 목표를 망각하고 한쪽이 몽니를 부리거나 딴죽걸기에 나서면 정돈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50 대 50으로 합작회사를 세울 때는 적어도 어느 한 쪽이 주식을 단 한 주라도 더 보유하도록 합작투자계약을 해야 나중에 주주 간 의견대립으로 회사가 정돈상태에 빠지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정돈상태는 예방·회피하여야 하고, 그럼에도 발생하였다면 해결하고 그 피해를 조속히 회복하여야 한다. 주식회사가 정돈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할까? 주주나 이사들 사이의 심각한 불화로 회사가 마비된 경우에 달리 타개책이 없다면 해산할 수밖에 없다. 상법은 해산판결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 ‘주식회사의 업무가 현저한 정돈상태를 계속하여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긴 때 또는 생길 염려가 있는 때’에는 10퍼센트 이상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법원에 회사 해산명령을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극한 대립으로 의사결정이 교착에 빠져 정상적인 회사 경영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 해산 이외에는 주주를 보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의 한국정치는 한 마디로 ‘정돈(停頓)의 정치’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예산안 통과 시한을 못 박은 헌법조차 무시하기 일쑤다. 막다른 골목까지 가서야 겨우 정돈상태가 풀렸다가 또 정돈상태에 빠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정돈상태의 반복으로 국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치고 있다. 원래 국회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정돈상태에 빠져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는, 국회의 해산 이외에 국민을 보호할 길이 없다. 지난 달 김황식 전 총리가 쓴 소리를 했다. ‘독일의 힘, 독일의 정치’에 대해 강연하면서 헌법에 국회해산 제도가 있다면 국회를 당장 해산해야 한다고 일갈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정돈상태에 빠지더라도 주식회사처럼 해산할 수도 없다. 주식회사의 해산판결 제도와 같은 국회해산 제도를 두지 않은 헌법은 상법보다도 치밀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면 국회의 정돈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회피할 수 있는 ‘안티 데드락’(anti-deadlock) 시스템은 없는가? 달리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원칙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것은 정치의 복원이다. 요즘 협치와 연합의 전통을 가진 독일 정치를 모두 부러워한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와 타협과 절충이다. 상호양보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해결 못할 문제가 없다. 모든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수학선생님이 영어의 ‘problem’을 ‘풀어보렴’으로 읽었다. ‘problem’은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우회로(迂廻路)를 닦는 것이 정치적 상상력이다.
주식회사로 말하자면 주권자인 국민은 주주다. 먹고살기에 바쁜 국민을 대신해서 미래한국에 대해 고민하도록 뽑아놓은 수임인(受任人)이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민생과 미래를 외면하고 이념과 과거에 얽매여 정치가 정돈상태를 반복한다는 것은 주주인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이자 배임이다. 회사의 이사가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과 진배없다. 국리민복과 국가이익을 위해 장애물을 극복하는 공동전선에서는 여·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정상적인 민주국가다. 국가경영의 목표를 공유하고 사다리를 함께 올라가야 한다. 국회는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정돈상태를 해결하는 ‘데드락 브레이커’(deadlock breaker)가 되어야 한다. 정치 스스로가 데드락에 빠지는 ‘정돈(停頓)의 정치’가 아니라, 사회갈등을 해결하고 이 시대의 문제를 정리정돈하는 ‘정돈(整頓)의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더 이상 데드락에 빠지지 않는 ‘골디락스9)(goldilocks) 정치’가 눈앞에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중앙SUNDAY 2013. 12. 15.자)
9) 영국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서 유래한 말. 성장은 하면서도 물가는 상승하지 않는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