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로 가는 길
조세법률주의를 위한 변론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조세법률주의는 죄형법정주의와 쌍둥이라고 일컬어진다. 조세법률주의 하에서는 세법을 집행할 때도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하며, 행정편의주의적인 확장해석이나 유추적용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0. 3. 16. 선고 98두11731 전원합의체 판결). 이른바 엄격해석의 원칙(Lex stricta)이다.
여기까지는 법률가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법리인데, 이것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적용될 때는 상당한 온도차가 생기게 마련이다. 목적론적 해석, 조세부담의 공평, 실질과세의 원칙을 강조하는 과세관청과 일부 조세정의파 법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듣기에 거북하겠지만 변호사들은 이들을 “의심스러울 때는 국고의 이익으로(in dubio pro fisco)” 결정하는 국고주의적 성향이 강한 분들이라고 표현한다. 조세법률주의를 바라보는 개개 법관의 철학이랄까 가치관이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있다.
대도시에서 법인을 ‘설립’하면서 본점용 부동산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취득세와 등록세가 중과된다. 기억하기도 싫지만 이른바 IMF 외환위기 이후 서울의 빌딩 값은 폭락했다. 그 무렵 서울에서 헐값에 나온 빌딩을 취득하려는 경제주체들은 중과를 피하기 위하여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휴면법인의 주식 100%를 인수하고 건물임대업을 추가한 사업자등록을 다시 한 다음 그 법인 명의로 빌딩을 취득하였다. 법률의 맹점을 활용하여 절세를 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과세관청은 형식적으로는 기존 법인이 동일성을 유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주 및 사업내용이 전혀 다른 새로운 법인을 설립한 것이라고 하여, 수십개 회사에 대해 수백억원대의 부과처분을 하였다. 원고들은 휴면법인을 인수하였을 뿐 법인을 ‘설립’한 것은 아니므로 조세법률주의 원칙상 중과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어디까지나 기존의 법인이 빌딩을 취득한 것이므로 중과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파트로네스’로서의 변호사는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클라이언트’를 옹호할 책무가 있다.
하급심판결은 엇갈렸다. 당사자가 취한 법형식을 존중하여 폐업 법인을 인수한 것일 뿐 새로운 법인을 설립한 것은 아니라는 판결과, 폐업하였던 회사를 인수하고 인적·물적 조직을 완전히 변경하였기 때문에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보고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엇갈렸다.
다행히 대법원은 조세법률주의를 관철하였고, 서울시는 세금 765억원을 반환해 주고 989억원의 과세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휴면법인을 인수한 경우도 법인의 설립에 준하여 중과세를 하는 것이 입법론으로는 바람직할지 몰라도, 조세법률주의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국민의 권리보호 쪽으로 선택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국고의 이익에 반하여(in dubio contra fiscum)” 판결하여야 한다. 법인, 단체, 개인 등 모든 경제주체는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하면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당사자가 선택한 그러한 법률관계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법의 미비점을 해결하는 것은 국회가 할 일이지 법관이 조세법률주의를 뛰어넘는 판결로써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법원판결 후 2010. 12. 27. 법률 제10416호는 ‘법인을 설립’ 다음에 괄호를 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휴면법인(이하 “휴면법인”이라 한다)을 인수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는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입법적으로 해결하였다.
조세법률주의에 대해서는 20여년 전인 1992년 11월 법관연수에서 이회창 대법관이 명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결론 부분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진실의 열매가 저 너머에 보이더라도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담장을 짓밟고 넘어가야만 따올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 열매를 포기하려는 것이 적법절차주의의 기본정신이고 이것은 조세법률주의의 기본정신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조세공평의 추구를 조세법률주의의 권리보장적 기능을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하려는 것은 조세공평의 원칙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그 남용을 예방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대한변협신문 2013. 2. 2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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