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로 가는 길
대법관 직역 할당제 도입은 신중히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대법관 13인 중 과반수를 현직 법관 아닌 법조인 중에서 임명하도록 강제하는 대법관 직역할당제를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법원조직법 제42조는 45세 이상 및 법조경력 20년의 법조경력자 중에서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임명 당시의 최종직역이나 주된 경력에 대한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의 최종심으로서 권리구제 기능을 담당하면서도 동시에 헌정체제에서 최고법원의 위상에 걸맞은 정책법원 기능도 추구해야 한다. 대법원이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를 반영하고 법치주의의 심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가 시대정신에 맞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직역할당제를 법률로써 강제하는 것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먼저 직역할당제의 위헌성이 지적된다.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다양성을 추구한다면 직역만이 아니라 나이, 성별, 출신지의 할당도 해야 한다. 정년이 70세로 바뀐 이상 40대, 50대, 60대가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국회·지방의원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제처럼 소수자·약자 보호라는 면에서 여성을 우선 할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역별 강제 할당은 법체계에 맞지 않고, 헌법재판관과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정통법관 위주의 일률적 구성이 가져올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성 추구는, 입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대통령·대법원장이 의지를 가지고 ‘좋은 헌법 관행’으로 정착시키면 되는 문제이다. 부득이 입법을 하더라도 헌법정합성을 확보하려면 보다 완화된 수단을 써야 한다. 법원조직법에 선언적 규정을 두는 데 그쳐야 한다.
이번 전격적인 입법 추진은 한국판 ‘코트 패킹(court-packing)’이라는 우려도 있다. 검사 출신 대법관이 없는 데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라는 오해까지 받고 있다. 개정되더라도 비법관 절반 중에서 검사·변호사·교수의 비율은 어떻게 할지 여전히 문제다. 오히려 검사 출신이 과거보다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염려도 있다.
무엇보다도 ‘원 포인트(one point)’ 법 개정은 위험하다. 대법관 임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상고심제도 전반의 개혁과 함께 다루어야 할 종합적인 사안이다. 발의에 참여한 과반수 국회의원 숫자로 밀어붙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법관 1인당 연 3천 건을 처리해야 하고 권리구제 기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상고제도 하에서는 재판능력이 없고서야 대법관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상고심재판을 감당할 만한 적임자는 법원 내부에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역 할당은 심리불속행제도의 폐지, 대법원을 대법관-대법원판사로 이원화하는 방안, 고위법관·대법원판사에 대한 법조일원화 확대 방안 등 상고심제도 개혁과 병행하여 검토할 문제다. 필요하다면 ‘상고제도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심도 있게 논의한 다음 개선 입법에 나서야 한다. (201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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