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로 가는 길
재판관 이름에 걸맞은 재판관

『절망의 재판소』는 일본에서 올해 초 출간되어 아마존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법과대학원 교수다. 1954년생으로 도쿄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9년 도쿄 지방재판소 판사보로 임관하여 33년간 엘리트 재판관으로 일했다. 워싱턴대 연수를 다녀오고 최고재 사무총국 민사국 판사와 최고재 조사관으로 근무했다. 재판소 계층구조의 상층부로 가는 걸 포기하고 연구와 글쓰기를 통해 ‘옳은 소리’를 하다가 눈 밖에 난 그는 2012년 결국 교수로 변신했다. ▶내가 재판관을 그만 둔 이유(자유주의자, 학자까지 배제하는 조직의 구조), ▶최고재판소 판사의 숨겨진 맨얼굴(겉모습과 숨겨진 속내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권모술수의 책사들), ▶‘감옥’ 속의 재판관들(정신적 ‘수용소 군도’의 수감자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재판인가?(당신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주지 않는 재판소), ▶마음이 일그러진 사람들(재판관의 불상사와 추행사건, 정신구조와 그 병리), ▶지금이야말로 사법을 국민과 시민의 것으로(사법제도 개혁의 악용과 법조일원제도 실현의 필요성). 여섯 장의 제목이다. 저자의 재판소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재판소에 정면으로 칼을 겨눈 셈이다. 저자는 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학자적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하지만, 사감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가 재판관 출신 최고재 판사를 네 유형으로 분류한 대목이 흥미롭다. 이렇게 유형화하는 것이야말로 마치 영롱한 세상만사를 오직 무지개의 기본 색깔만으로 바라보는 격이기도 하겠지만,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비춰볼 자기반성의 거울이나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요약해서 소개하는 이유다. 첫째, A유형은 인간미가 풍부하고 단점까지도 포함해 개성이 넘치는, 정말 재판관다운 인물이다. 저자는 참으로 박하게 평가하여 그가 아는 30명 중 딱 한 사람밖에 없다. 전체의 5%, 후하게 쳐서 6~7%다. 그가 말한 사람은 사무총국 출신 재판관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일에나 일정한 식견과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적인 따스함도 가지고 있다고 존경한다. 둘째, B유형은 ‘이반 일리치’ 타입으로 전체의 45%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제정 러시아 시절의 ‘관료법관’ 이반 일리치가 주인공이다. 성공을 했고 머리도 좋으나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없는 판사다. 악의 없는 무의식적인 자기만족과 자만심, 조금 심하게 말하면 세련된 면이나 시원시원한 면이 없는 자기기만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관료나 공무원에 대체로 이러한 사람이 많고, 이반 일리치는 관료 중에서 꽤나 질이 좋은 유형이다. 이런 타입은 머리가 좋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깜빡 속고 만다.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 사려가 깊은 재판관에게는 존경을 받지 못하고, 동기들 중 친구다운 친구가 없다. 교양은 빌려온 듯해서 그것을 꿰뚫어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곧 들통이 난다. 이런 사람의 미소에서는 인간적인 따사로움이나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 본질은 이기주의자다. 셋째, C유형은 속물, 순전한 출세주의자들로 40%라고 한다. 청년법률가협회(이른바 청법협) 소속 재판관에 대한 재임용 거부와 온갖 부당대우 및 탈퇴 공작(블루퍼지라 한다. 청법회 사냥이란 뜻이다)은 일본 사법행정의 역사에서 치부 중의 치부인데, 자기가 그런 비상식적인 행위에 관여했고 그러한 실적을 인정받아 출세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공공연히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부류의 재판관이다. 그렇데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당황시킨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부류다. ‘호걸스러움’은 드라마나 만화에 등장하면 나름대로 거물로 비춰져 관객이나 독자를 매료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더 추악하고 쳐다보기조차 싫은 측면도 많으나 그 부분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고 한다. 넷째, D유형은 분류 불가능형 또는 ‘괴물’로 10%라고 한다. 너무나도 특이해서 앞의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집무실은 언제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찍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며 사무총국 과장 시절에는 부임 당시에는 건강했던 부하 서기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늘 미열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돼서 초췌한 몸으로 지방재판소로 달아나 버렸다는 일화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저자도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감정이라는 것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국장 시절, 선배에게 약간 반항하는 재판관에 대해 국장들이 통상적으로 취하는 은근한 고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누가 봐도 명백하게 아랫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태도와 말투로 명령하던 사무총국계 엘리트의 전형이라 여겨지던 인물이 최고재판소 판사에 취임하자마자 돌변하여 ‘민주파’가 되어 여러 가지 훌륭한 의견을 개진한 예도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의 경우 그 변화가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극단적인 양면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견딘다는 것이 바로 괴물인 이유다. 저자는, 사법행정을 통해 재판관을 철저히 지배, 통제해서 ‘마치 무인지경을 달리듯’이라는 평을 듣고 ‘미스터 사법행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어느 최고재 장관도 D유형에 속한다고 혹평한다. 저자의 최고재 재판관에 대한 종합 평가는 이렇다. “첫째, 재판관 가운데 지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 일정 비율로 존재하지만 최고재 판사가 된 사람들의 능력이 결정적으로 높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둘째, 커리어 시스템 속에서 최고재 판사가 된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어쨌든 어느 정도 타인을 짓밟아가며 앞뒤 가리지 않고 출세를 목표로 삼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로, 재판관 본연의 모습과는 다른 행동을 해온 예가 많다. 셋째, 그들도 최고재 판사가 된 후로는 나름대로 ‘좋은 판결’을 쓰고 혹은 ‘그럴 듯한 의견’을 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보다 그 자리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또 그 사람들이 최고재 판사가 되었으면 훨씬 더 좋은 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참된 최고재 판사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재판관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선임된다면 최고재의 판결뿐만 아니라 하급심의 판결도 그 모습이 조금은 바뀔 것이다. 결국 계층체계 일변도의 관료적 커리어 시스템 속에서 능력, 인격, 식견, 넓은 안목과 비전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인재는 거의 자랄 수 없다. 설령 그런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인물이 최고재 판사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저자가 말하는 ‘재판관 이름에 걸맞은 재판관’은 어떤 판사일까? 권력과 사회적 강자로부터 국민과 시민을 지키고 기본적 인권 옹호에 충실하여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판사 즉 ‘큰 정의’의 실현에 노력하는 판사, 국민과 시민을 위한 재판, 당사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재판을 하는 판사, 소송의 중요한 쟁점에 대해 딱딱한 형식논리로 사무적으로 처리해 버린 판결문이 아니라, 꼭 판결 받고 싶었던 중요 쟁점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합당한 이유와 충분한 논리와 근거를 대고 설득하는 판결문, 이해하기 쉽고 당사자의 기분과 마음까지 이해시키는 판결문을 쓰는 판사, 공정하고 청렴강직하며 성실하고 논리적이고 우수한 판사가 그들이다. 저자는 주어진 법의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법률기술자(legal technician)로서의 재판관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가치가 충돌하는 사건,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사건, 당사자가 가진 힘·정보에 큰 격차가 있는 사건, 새로운 법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재판관의 창의적인 법 창조 기능이 요구된다고 한다. 그의 결론은,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하고 이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 받는다’는 일본국헌법 제76조가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신문 2014. 8. 1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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