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 나의 생각
인권과 공공질서의 조화 : 공화(共和)의 길

대한민국은 ‘두 번의 정권교체’(two-turnover) 테스트를 통과하여 선진국형 민주주의에 진입하였다. 이코노미스트가 2012년에 발표한 민주주의지수 세계 20위의 ‘완전민주주의’ 국가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23위), 대만(35위)보다 더 민주화된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분열되고 파편화된 다원주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빈부·강약의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0년에 0.279였으나 2012년에는 0.31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악화 속도가 미국의 3배를 넘는다.
권리와 권리, 이익과 이익, 가치와 가치가 수시로 충돌하여 사회갈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무류주의와 대결주의의 당파(黨派) 사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절제와 책임성이 없는 과도한 민주주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갈등지수 세계 2위가 말해주듯이 ‘사회갈등’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사회갈등지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면 GDP가 20% 늘어난다고 한다. 사회갈등은 소득분배의 악화와 사회 양극화, 경제성장의 둔화, 저출산·고령화, 실업의 증가, 범국가적 부채 위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위기요소다. 그러나 사회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권’과 ‘공공질서’를 합리적으로 조화시키는 방안은 결국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총체적 역량을 제고하는 것이다. 인권과 공공질서의 조화는 결국 입법과 이에 대한 사법심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인권과 공공질서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수형자’에게도 선거권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2호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한 자’에게는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다. 헌재는 2004년(2004. 3. 25. 선고 2002헌마411 결정)과 2009년(2009. 10. 29. 선고 2007헌마1462 결정)에는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2호는 공공질서를 해친 중범죄자의 발언권을 박탈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법질서에 대한 존중을 강화한다는 입법목적이 있다. 공민(公民)으로서의 책임의식이 부족한 어린이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도 같은 취지이다. 시(時)의 고금(古今),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수형자나 어린이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부터 그랬다. 일종의 ‘civil death’인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지난 달 결정(2014. 1. 28. 선고 2012헌마409 결정)에서, 범죄자라는 소수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이고, 다만 수형자에게 헌법합치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입법자의 형성재량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2015년 말까지 종전 법의 잠정적용을 명했고, 입법자는 2015. 12. 31.까지 개선입법을 하여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입장’을 관철한 것이다. 인권과 공공질서 중 인권에 치중한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해 청구인 측에서는 단순위헌결정을 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토론자가 보기에는 2014년 결정이야말로 우리 헌법의 ‘공화주의(共和主義)적 입장’을 도외시한 결정이다. 그런 식이라면 선거권 19세 연령 제한도 이제 위헌이라고 해야 한다. 2014년 결정에 소수의견이 1명뿐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고 국가의 관여는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헌법관만 가지고 접근하면 위험하다. 오늘 제1주제에서도 논의되었거니와, 사상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헌법 자체를 공격할 때는 방어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나아가, 병역의무가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그리고 재판관이나 법관들이, 우리 헌법의 공화주의적 입장에는 주목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입장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자 한다. 헌법은 인권과 공공질서를 조화시키는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 사법작용도 국가작용의 일환이므로 사법기관은 ‘옳고 그른 것’을 정밀하게 법리적으로 가리는 데(그것은 일도양단적이지도 않다)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공화(共和)의 길을 제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국민의 기본의무인 병역의무를 고의로 회피한 자에 대해서는 고위공직 취임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든다거나, 공직선거에 함부로 기권하는 유권자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법률을 만든다고 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론자는, 인권과 공공질서를 합리적으로 조화시키는 길로서, 공화주의를 강조한다면, 그런 입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달성하였지만 아직 공화정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는 못했다고 본다. 과도한 민주주의 상황을 맞아 오히려 극심한 사회갈등, 집단이기주의, 법 무시 풍조와 법치주의의 훼손을 겪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공화(共和, republic)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화국이란 말이 헌법을 만들 때에 상정한 비(非)군주국이라는 소극적 의미만 있는 것일까? 원래 ‘공화국’이란 법과 공공선(公共善)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의 ‘민주공화국’의 현재적 의미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결합 양식으로 해석함으로써 이제 우리도 헌법 속에서 공화주의를 ‘발견’해 내야 한다. 대한민국 헌정체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혼합정이라는 정치학자들의 견해를 헌법해석에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과 공공질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오늘 토론 주제도 사실 ‘공화주의의 재발견’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공화주의는 공동체 전체에 대한 애정, 공동체적 우정, 역지사지(易地思之), 공감, 공공선(公共善), 공민(citizen)의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공직자의 윤리와 책임성을 강조한다. 준법과 공공정신, 법의 지배가 핵심요소다. 사회갈등을 법적·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공선이다. 사회갈등을 법적·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첫째, 법치국가에서 국민들이 법과 규범을 지키고 법의 절차에 따라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생존권 등을 빌미로 격렬하게 법질서에 저항하고 법을 무시하고 초월하는 정치적 행태로 나아가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일제와 권위주의정권의 억압적인 법의 횡포에 대한 민주화 저항의 시대는 지났다. 아직도 법관이 발부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의 집행에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 동안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집단이나 다중의 위력을 가지고 공무집행방해를 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공무집행방해를 하는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그리고 발표자께서도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공민의 시민적 덕성을 길러주는 법 교육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교육계와 언론계의 역할이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민주주의의 후퇴’ 주장에 대해 한 마디만 하겠다. 공공질서와 인권을 조화시키기 위해 인권을 제한하는 것을 두고 ‘자유주의의 후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제는 불가역적이어서 후퇴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둘째, 국민들에게 준법을 요구하려면 먼저 제대로 법률을 만들어 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권이 준법에 솔선수범하고 공화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의 입법의 내용과 절차가 전체 법체계와 법치국가 원리에 부합하고, 이해관계자나 특정집단의 ‘부분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에 맞으며, 헌법정신과 정합성(整合性)을 갖추도록 하여야 한다. 공화주의는 법과 제도를 만들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정치이념이다.
한국정치는 한 마디로 ‘정돈(停頓, deadlock)의 정치’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예산안 통과 시한을 못 박은 헌법조차 무시한다. 사회갈등을 해결하고 이 시대의 문제를 정리정돈하는 ‘정돈(整頓)의 정치’를 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이 안 되는 경우에도 갈등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셋째, 발표자께서도 강조하였지만, 헌정체제 내에서 사법기관의 역할을 재인식해야 한다. 사법기관이 적시에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사회갈등 해소에 앞장서는 것은 국부를 창출하는 일이다. 사법기관이 갈등해결능력을 제고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에서 필수조건이다. 공정하고도 신속한 재판이 필요한 이유다. 첨예한 사회갈등과 이해관계의 대립은 대화와 타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행정부나 입법부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기에 공적 권위를 가진 사법기관의 결정으로써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법기관이 공적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정치권이 극한대립과 통치불능의 상태로 갈등해소에 실패하는 위기의 시기에는 사법기능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법기관은 본질적으로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법부는 가진 자와 강한 자의 편도 되어서는 안 되지만 무작정 약자와 소수자에게 봉사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 개인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을 함께 추구할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인권과 공공질서의 합리적인 조화를 통한 한국 법치주의의 내실화라는 과제는 헌법해석, 법과 제도, 정치, 국민의식, 전통과 역사, 법문화 전반에 걸친 논쟁거리다. 토론자로서는 그 조화의 길로서, 우리 헌법 속에서 공화주의적 입장을 발견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014. 2. 25. 법조언론인클럽·대한변호사협회 공동주최 ‘박근혜정부 1년과 법치주의’ 토론회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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