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멘토 - 윌리엄 슈어드
대통령은 탁월한 멘토를 가까이 해야 한다. 거의 모든 중요사안을 믿고 상의할 수 있는 역량, 인품, 유능함, 애국심, 겸손을 두루 갖추고 사심 없이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큰형님 같은 멘토 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멘토는 거의 유일무이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윌리엄 슈어드 국무장관이다. 뉴욕 출신 월리엄 슈어드 (1801~1872)는 링컨보다 여덟 살 위에다가 정치경력은 물론 식견과 경륜도 뛰어났다. 변호사 출신으로 29세에 최연소 뉴욕주 상원의원, 37세에 뉴욕주지사(재선), 48세에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을 거친 거물 정치인이었다. 탁월한 정치인 슈어드는 1860년 공화당 전당대회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1, 2차에서는 예상대로 1등을 하였으나 3차에서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의 풋내기 정치인 링컨에게 예상과 달리 석패했다. 당시 링컨은 연방하원의원 딱 2년을 하고 연방상원의원 선거(일리노이주의회에서 간접선거)에서 2번 연속 낙선한 터였다. 링컨 대통령은 경쟁자였던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다른 경쟁자이던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에드워드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링컨 왈, "나는 가장 유능한 사람을 뽑기로 결심했다." 링컨은 대통령 재임 내내 밤에도 수시로 슈어드 집을 찾아가 대화하며 중요인사를 상의하였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해방을 개헌으로 완성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거의 공동정권이라 할 만하지만 슈어드는 동생뻘 링컨의 탁월함을 늘 존경했고 대통령의 최종결정권을 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