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다- 공화(共和)의 재발견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다

- 공화(共和)의 재발견

 

30여년 전 해군 복무 시절에 배운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이 롤링피칭이다. 배는 좌우로 흔들리고(롤링), 앞뒤로도 흔들린다(피칭). 지금 대한민국호가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고 롤링과 피칭을 동시에 맞이하여 표류할 지경이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산다. 나는 다행히 대한민국호의 복원력과 회복탄력성을 신뢰할 근거는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누란의 위기일수록 원칙과 기본으로 돌아가야 답이 보인다. 법치국가에서 그 원칙과 기본은 바로 헌법정신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에서 말하는 민주공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살아 있는 한 대한민국은 난파 당할 리가 없다.

 

사실 헌법 제1조 제1항의 민주공화국, 특히 그 중 공화(共和, republic)가 무슨 말인지는 법학도가 된 지 40년이 다 되도록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화라는 말은 과거 제3공화국의 민주공화당에 쓰인 이후 요즘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용어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민주당·공화당이란 말을 쓰고 있으니 그 끈기가 놀랍다.

 

이제 헌법 제1조 제1항의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결합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헌법에서 공화주의를 발견해내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한민국의 헌정체제는 자유주의, 민주의의, 공화주의의 결합체로 보아야 한다. 그동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비해 공화주의에 대해 소홀했다.

 

공화의 전통은 동·서양 어디에서나 있었다.

중국 주() 나라 10대 여왕(厲王)이 간신배를 등용하고 탐욕스런 폭정을 거듭하다가 기원전 841년에 경, 대부 등의 국인(國人)에게 쫓겨난 것이 이른바 국인폭동 사건이다. 그때부터 기원전 828년까지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왕을 대신해 함께 정무를 맡아보았다. 요즘 말로 협치(協治)를 한 것이다. 이것이 공화라는 용어의 유래다.

고대 로마는 BC 510년 왕정을 폐하고 약 450년 간 공화정(res publica)을 하였다. 2명의 통령(統領·consul)이 정부수반으로서 정치를 함께 담당하였다. consul은 원래 두 마리 소가 쟁기를 끄는 데서 나온 말이다. 산마리노 공화국은 이탈리아 안에 있는, 서울의 1/10 정도 되는 소국인데, 그 나라는 현재도 통령 2명이 다스린다. 통령이 함께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현재도 좋은 교훈이 된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는 민회에서 스트라테고(stratego·국가전략담당관)’ 10명을 뽑았다. 전략을 뜻하는 ‘strategy’의 유래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국민을 위해 희망을 만들고 길을 닦는 현대판 스트라테고이자, 현대판 통령이다.

 

원래 공화국이란 법과 공공선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이다. 공화주의는 공동체 전체에 대한 애정, 공동체적 우정, 역지사지, 공감, 공공선, 공민의 시민적 덕성, 공직자의 윤리와 책임성을 강조한다. 공공선은 준법과 공공정신, 법의 지배가 핵심이다. 역사학자 이태진 박사는 공화정신은 홍익인간의 이념에 가장 가깝다고 보고, ‘다 함께 잘 살기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법조계로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과 분쟁을 법적·제도적으로 잘 해결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공선을 실천하는 길이다.

 

나는 공화주의의 핵심은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서 말하는 바로 그 견제와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란 두 사람이 손을 합쳐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을 함께 한다는 뜻인데, 단지 혼자서 할 수 없어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독단을 막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권력의 분산과 절제,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공화정신의 핵심이다. 링컨 대통령이 정적들을 내각에 포진시켜 팀 오브 라이벌을 만든 것은 그래서 유명하다.

입법·사법·행정 권력의 엄격한 분립과 상호 견제가 필요한 이유다. 행정부 내에서도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이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국정을 함께 처리하도록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실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의장(president)일 뿐이다.

 

사법부도 옳고 그른 것을 법리적으로 가리는 데(그것은 일도양단적이지도 않다)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공화의 길을 제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사법기관은 본질적으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최후 보루다. 그러나 가진 자와 강한 자의 편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무작정 약자와 소수자에게 봉사해서도 안 된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 인권을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공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을 함께 추구할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을 추구하며 함께 일한다는 공화정신을 기억하자. 위기에 봉착했을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산다. 공화주의 정신을 지켜야 미래의 길이 보인다. 공화주의의 현대적 의미를 음미해볼 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018. 8. 28.)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18-08-28

조회수11,369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

기재부가 이를 악 물어야 한다 -퍼주기 예산에 대한 반대

또 전국민 난방비지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이후 넙쭉 어멈 떡 돌리듯이 퍼주기 추경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가 생겼다. 로마시대에 일찍이 공짜 돈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백성들의 우매한 집단성에 대해 결사반대했던 영웅이 바로 로마의 젊은 재무관 ‘소 카토’이다. ‘대 카토’의 증손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비교 영웅전 >에서 영..

Date 2023.02.08  by 황정근

기업의 목적, 정치의 목적

기업의 목적은 이윤, 정치의 목적은 국민 행복.나는 <누구에게나 행복한 세상>의 꿈을 위하여!

Date 2023.02.12  by 황정근

‘확장억제 공약’의 제도화 방안 -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

● ‘확장억제 공약’의 제도화 방안-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북한은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제정하여 핵무기 사용을 법제화했다. 대한민국을 겨냥한 북핵에 대응하여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상한 각오로 ‘북핵을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만드는 상응조치(correspondent measure)’를 갖춰야 한다. 북핵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딱 맞는 상응조치는 무엇일까? 북핵..

Date 2023.03.01  by 황정근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추천·제청 절차의 제도화

●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추천·제청 절차의 제도화2021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신설된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대법원장의 제청 및 국회의 동의, 검찰총장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법무부 장관의 제청, ..

Date 2023.03.23  by 황정근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와 본회의 직회부의 법리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와 본회의 직회부의 법리1. 입법취지“법률안, 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소관사항이다(국회법 제37조 제1항 제2호 아목). 국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면법사위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관한 심사’를 거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국회법 제86조 제1항). 법사위의 체계·..

Date 2023.04.15  by 황정근

인사추천권과 임명권의 충돌

방송통신위원회는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중 유일하게 대통령 소속이다. 다른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즉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금융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모두 국무총리 소속인 것과 다른 점이다. 국무총리의 통할에서 벗어난 중앙행정기관의 설치는 정부조직 구성원리에 맞지 않다. 이렇게 소속이 특이하다 보니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5명 ..

Date 2023.05.04  by 황정근

증인의 변호인 - 변호사의 증인신문 참여권

요즘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이 조사받을 때도 변호사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과거에 피의자 변호인의 조사 참여를 허용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행정관청의 조사 절차에서도 변호사의 조사 참여가 확대되는 추세이다. 그러면 증인이 변호사를 증인신문에 대동하여 동석하게 할 수 있는가...

Date 2023.05.24  by 황정근

독립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

독립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정부조직법에 규정이 없는 독립기관으로는 헌법기관인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감사원과, 독립 법률에 따라 설치된 국가인권위원회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정부조직법에 나오는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중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소속이고, 그밖에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은 모두 국무총리 소속이다. 국가..

Date 2023.06.30  by 황정근

'방송3법' 본회의 직회부 권한쟁의심판 변론문

2023헌라2 최종의견진술청구인들 대리인 황정근   현행 제도의 변경을 초래하는 제·개정 법률안은 상위규범인 헌법에 위배되지 않고, 기존의 다른 법률과 모순되지 않으며, 법률의 용어도 명확히 사용되어야 합니다. 법사위는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통해 위헌 여부, 다른 법률과의 관계, 내부 조항 간의 충돌 유무 등을 심사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물론 ..

Date 2023.07.13  by 황정근

선출직 고위 공직자의 직업윤리

● 2023년 7월 26일자 발표문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당원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에 대해 당원권정지 10개월의 징계를 의결하였습니다.지난 15일 재난상황에서의 골프행위와, 그 후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게시한 17일과 18일의 SNS 글, 그리고 17일 국회에서 한 언행은 모두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규정 제20조 제2호의 징계사유 즉 ‘당의 윤리규칙을 위반하여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

Date 2023.08.04  by 황정근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최근 정치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 사람들과 1 대 1 표결해야 하느냐’라거나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고 실언을 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무엇인가. 명언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윈스턴 처칠)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Date 2023.08.07  by 황정근

포틀래치(potlatch) - 선물의 정치학

포틀래치(potlatch)- 선물의 정치학포틀래치는 ‘식사를 제공한다’, ‘소비한다’는 뜻이다.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서는 출생, 성년식, 결혼식, 장례식, 추장 취임식, 집들이 때 손님들을 초대해 온갖 음식과 선물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그런 의례를 포틀래치라 한다. 인디언 사회에서는 재물을 베푸는 것이 의무였는데, 누가 더 ..

Date 2023.08.09  by 황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