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체제와 법치주의
대한민국헌법과 사법체계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어언 환갑이 지났다. 사법부를 보면 정확한 출범일은 알 수 없지만 1948년 8월 5일 김병로 대법원장이 임명되고 1948년 11월 1일 대법관 5명이 임명된 지 60여년이 지났다.
지난 60여년 만에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고, 이제 선진일류국가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 60년 현대사의 성취와 좌절, 빛과 그림자를 회고해보면, 종종 정치적 이유로 수차 개정되는 운명을 맞기도 하였지만, 대한민국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조로 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1988년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후 헌법은 이제 국민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생활규범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부나 각급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헌법 제정 및 개정 관련 각종 공문서와 사진 등 자료를 한데 모아 국민들에게 전시하는 기념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각종 헌법초안이나 원본자료 등을 국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헌법의 제정 및 개정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2007년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국 헌법 시행 60주년을 맞이하여 무려 8면에 걸쳐 사설을 게재하여 일본의 신전략으로 ‘지구공헌국가’를 제시한 바 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헌법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헌법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선진법치국가를 향한 우리의 꿈을 더욱 다질 수 있다.
대한민국헌법도 이미 여러 차례 개정되었듯이 앞으로도 불변일 수는 없다.
개헌안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안될 수 있다.
제18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만들어 개헌안에 관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국회의원 중 거의 3분의 1이 회원이었던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에 관하여 세미나를 잇달아 개최하는 등으로 헌법개정논의를 본격화하였으나, 여론 확산에 실패하여 개헌안 초안 마련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1987년의 개헌 이후 남북관계는 물론 시대상황이 많이 변하였기 때문에 현행 헌법이 우리 몸에 맞는지 재점검할 때가 되었다.
특히 그 동안 나타난 대통령 단임제의 문제점을 보완할 때가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현시점에서 고도의 정치적 이슈인 개헌을 본격 거론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신중한 입장도 있다.
산적한 국정현안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관리된다면, 본격적으로 개헌 문제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중임제에 관한 원-포인트(one-point) 개헌 제안이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무대에서 사라진 예가 있는데, 1987년의 민주화 개헌 이후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대통령 단임제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수준의 개헌은 언제든지 공론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결국 모든 이해집단과 기관·단체 간의 정치투쟁이 본격화될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개헌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 개헌이 좌초될 수도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과연 앞으로 개헌 이슈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고 언론과 국민여론의 지지를 얻으며 추진동력을 획득하게 될지는 사실 미지수이다.
특히 영토조항이나 기본권조항에 관한 논의까지 확대되면 개헌은 이념 대립으로까지 이어져 상당한 국력 소진을 초래할 수도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주로 통치구조 특히 현행 대통령 단임제의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데서 출발하고 있어, 앞으로의 논의도 거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법에서 기본적 인권 부분이야말로 국민생활의 미래와 직결되고 각종 법률 제․개정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본권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통치구조 부분은 정치권에서 논의를 주도할 수밖에 없지만, 기본권 부분은 정치권만이 아니라 법조계도 논의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의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헌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깊이 연구․검토하는 것은 법조계와 법학계의 몫이다.
향후 본격적인 개헌논의가 혹시 있을 것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차제에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도 각기 ‘헌법개정연구반’을 설치하여 헌법개정사항을 미리 추출하여 심도 있게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관련 전문가들의 철저한 사전 연구와 치밀한 준비가 선행되지 않으면, 개헌이 학자들의 이상론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타협에 의하여 기형적인 모습으로 이루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7월 17일 제헌절 기념식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개헌을 공론화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리고 국회의장의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속도감 있게 헌법개정안 연구보고서를 마련하여 주목을 받았다.
당시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 사법체계 관련 개헌의견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통합에 반대하고, 개헌의견은 주로 헌법재판소를 강화하면서 사법부를 약화시키는 것이어서 법조계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위 연구보고서는 일단 사법체계 관련 개헌의 어젠다(agenda)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었지만, 명령․규칙에 대한 위헌심사권 일원화, 재판소원의 예외적 인정,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임명권 삭제, 선거소송의 헌법재판소 이관 등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사항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관 간 갈등만 증폭시켰다.
사법체계 관련 개헌 문제는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한 다음, 정치인과 헌법학자들만이 아니라 사법제도 운영 경험을 가진 법조계의 중론을 모으고, 국민의 입장에서 무엇이 기본권 보장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기준으로 입법․사법․행정부 사이에 긴밀히 협의하고 충분히 논의한 후 국민여론의 공감대를 얻어서 결정하여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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