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25일 저녁 나의 모교인 대성고등학교 출신 법조인 모임(대법회)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나의 고교 후배이자 법조출입기자로서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출입하던 당시 대한매일의 장택동 기자도 옵저버로 참석하였다. 거기에서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던 백찬하 검사가 나에게
“지난달에 부동산 중개수수료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종전 판결과 엇갈리게 나갔는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담당재판연구관이 엄청난 실수를 하여 망신을 당하였죠. 누구죠?”
라고 물어 오기에, 내가
“그 재판연구관이 바로 나다.”
라고 대답하면서 설명을 해준 바 있다. 장택동 기자는 그 전말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는 200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판결문을 보자.
①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0다54406,54413 판결
부동산중개업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0조에 의하면 중개업자는 중개업무에 관하여 중개의뢰인으로부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고(제1항),위 수수료의 한도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건설교통부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특별시․광역시 또는 도의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제3항),구 부동산중개업법시행규칙(2000. 7. 29. 건설교통부령 제250호로 개정되어 2000. 10. 1.부터 시행되기 전의 것) 제23조의2 제1항에 의하면,법 제20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수수료는 중개의뢰인 쌍방으로부터 각각 받되 그 한도는 매매․교환의 경우에는 거래가액에 따라 0.15%(위 개정 후에는 0.2%)에서 0.9% 이내로 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한편 법 제15조 제2호는 중개업자가 법 제20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수수료를 초과하여 금품을 받거나 그 외에 사례․증여 기타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금품을 받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위와 같은 금지행위를 한 경우 등록관청이 중개업등록을 취소할 수 있으며(법 제22조 제2항 제3호),위와 같은 금지규정을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법 제38조 제2항 제5호),부동산중개업법이 ‘부동산중개업자의 공신력을 높이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질서를 확립하여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점(같은 법 제1조),위 규정들이 위와 같은 금지행위의 결과에 의하여 경제적 이익이 귀속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데에도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보이는 점, 그와 같은 위반행위에 대한 일반사회의 평가를 감안할 때 위와 같은 금지행위 위반은 반사회적이거나 반도덕적으로 보아야 할 것인 점,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부동산중개업법의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와 같은 규정들은 부동산중개의 수수료 약정 중 소정의 한도액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사법상의 효력을 제한함으로써 국민생활의 편의를 증진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이른바 강행법규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한도액을 초과하는 부분은 무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구 소개영업법상의 소개료에 관한 대법원 1976. 11. 23. 선고 76다405 판결,1987. 5. 26. 선고 85다카1146 판결 참조).
이 판결은, 구 소개영업법에 관하여 이미 무효라고 판시하였던 대법원 1987. 5. 26. 선고 85다카1146 판결,1976. 11. 23. 선고 76다405 판결 등을 변경할 필요가 없이 부동산중개업법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그 1년 전인 2001년에는 다음과 같은 반대 취지의 판결이 선고되었던 것이다.
② 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마70972 판결
부동산중개업법상 중개업자는 중개의뢰인으로부터 소정의 수수료 또는 실비를 초과하여 금품을 받거나 그 외에 사례․증여 기타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금품을 받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고(법 제15조 제2호, 제20조 제3항) 이에 위반하여 금품을 수수한 중개인에 대하여는 중개사무소의 개설 등록을 취소할 수 있고(법 제22조 제2항 제3호) 1년 이하의 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법 제38조 제2항 제5호)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위 법에 위 규정에 위반한 금품수수행위의 효력이나 수수된 금품의 처리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법은‘부동산중개업자의 공신력을 높이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질서를 확립’하여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위 금지규정은 단속규정에 불과하고 효력규정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여기 그 당시의 신문기사와 사설을 보자.
대법, “한도 초과한 부동산중개료 계약자에 돌려줘야” 작년 판례와 배치… 업무착오로 2가지 모두 유효
(조선일보 = 이명진 기자) 대법원 2부는 5일 김모(47.서울 동작구)씨가 ‘부동산 중개 수수료로 지급한 2,018만 원 중 법정한도를 초과한 1,800여만 원을 돌려 달라’며 부동산중개업자인 백모(59)씨 등 2명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백씨 등은 한도를 넘는 금액을 김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판결은 법정한도 이상의 중개수수료를 지급한 수수료 계약은 무효이며, 초과 지급분에 대해서는 수수료 지급일로부터 5년 이내(상사채권의 소멸시효)에 소송을 제기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2001년 3월 대법원 3부가 ‘법정한도를 넘는 수수료를 받은 중개업자의 처벌은 가능하지만 초과지급분을 돌려줄 의무는 없다’고 내린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가지 대법원 판결이 존재하게 돼 하급심 판결과 소송당사자들에게 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대법관 4명씩으로 구성된 3개의 재판부가 있으며, 종전과 다른 판결을 내릴 때는 이들 재판부에서 하는 게 아니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하게 돼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2001년의 판례가 판례검색시스템에 기재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을 내린 재판부가 미처 확인하치 못한 채 재판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판결은 일단 내려지면 효력이 있고, 상소(上訴)절차에 의해서만 바뀐다’며 ‘때문에 이번 경우엔 상반된 2개의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동일 사안에 대해 엇갈린 대법원 판례가 양립함에 따라 향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하급심 판결 등에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상반된 대법판결] “새 판결 우선 효력 ..혼란 불가피”
(조선일보 = 이명진 기자)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반되는 2건의 대법원 판결이 양립(兩立)하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원조직법 7조에 따라 ‘전원합의체’판결을 거치도록 돼 있다,‘전원합의체’란 대법관 전원과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재판으로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으며, 이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결론이 내려진다. 때문에 이를 거치지 않은 5일 대법원 2부의 판결은 ‘절차상하자’가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사건 판결을 내리기 전에 2001년 3월 역시 대법원이 내린 정반대의 판결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생긴 일로,대법원은 ‘검색시스템에 2001년 판결이 잡혀 있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결과를 그 중요도에 따라 A,C,D,X,XX등급 등 5개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전체 판결 중 15% 정도를 중요판결로 분류해 ‘판례공보(公報)’나 ‘전산망’에 등록하고 있다. 문제의 2001년 3월 판결은 중개업자가 의도적으로 수수료를 많이 받은 사안이 아니어서 중요도가 낮은 X등급에 분류됐으며, 판례공보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절차상 하자는 있다고 해도 이번 판결은 유효하다고 대법원은 밝히고 있다. 일단 판결이 내려지면 재상고나 재섬(再審)절차를 통해 바로잡기까지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절차를 통한 전원합의체 판결로 조만간 바로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예상할 수 있는 혼란이다. 법정한도를 넘는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인지(이날 판결),없는 것인지(2001년 판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하급심 판결들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날 판결을 따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옛 판결보다 새 판결이 우선 적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럴 경우 ‘현실적인 혼돈’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의 당사자가 될 부동산 중개업자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고, 현 상황에서 일선 법원의 재판부가 일률적으로 이번 대법원 판결을 따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어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법원의 판례 관리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법률과 비슷한 효력을 가져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복비’ 새 판결 주목한다(문화일보 사설)
대법원 2부는 5일 법정한도를 넘는 중개수수료(복비) 계약분은 무효라고 심판했다. 의뢰인이 중개인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원심을 깨고 사건을 되돌려 보낸 이번 판결은 법률적․사회적 두 측면의 논란과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이번 판결은 지난해 3월 판결과 저촉된다는 점이 문제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유사사건에서 부동산중개업법 제15조가 금지행위로 열거한 초과수수료 등에 대해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는 할 수 있지만 약정 자체를 무효로 볼 수는 없다’며 단속규정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엔 강행규정으로 바꿔 해석하면서 법원조직법 제7조를 간과했다. 판례변경은 대법원합의체 심판에 부쳐야 한다. 우리는 이 경우가 ‘법률에 의하여 판결법원을 구성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는 판례 (1967. 6. 29.)에 유의한다. 재심을 통해 판례저촉 상황을 해소해야 함은 물론, 사법부 내부적으로 판례관리 허점을 고쳐야 할 것이다.
절차의 흠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복비 수수 관행을 바로잡아 공정한 거래질서와 국민 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중개업법의 실효성을 보강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이번처럼 복비 계약금액 2,018만 원 중 무효분이 1,890만 원이나 되는 사례가 일상적이진 않겠지만 법정수수료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주고받는 복비 관행의 한 단면을 비춰준다.
우리는 또한 현행 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다는 부동산중개업계의 주장에도 주목한다. 건설교통부와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업계주장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해 부령․조례에 반영해 나가기 바란다.
내가 모시던 대법관님은 2002년 9월 4일 오후 2시 위 ①판결을 선고한 뒤 헝가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출장차 출국하였다. 대법원 공보관인 오석준 판사의 브리핑을 들은 어느 기자가 위 판결에 대한 대한부동산중개업협회의 반응을 알고 싶어 거기에 전화를 하였더니, ‘법정한도 초과 중개수수료도 무효가 아니므로 돌려받을 수 없다는 취지의 ②판결이 전년도에 이미 선고되었는데 어찌된 것이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공보관이 야근 중이던 나에게 급히 전화를 하였기에, 설마 하면서 위 ②판결을 종합법률정보에서 검색해보니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대법원 선고 판결문을 따로 보관하는 F:/sun 디랙토리에서 판결선고일을 가지고 겨우 찾아보니 과연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일을 어찌 수습할 것인가? 어쨌거나 내가 책임을 질 일이 틀림없다. 박병대 송무국장에게 나의 검토보고서를 보내주고 일단 퇴근하였다.
9월 5일 대법원은 물론이고 법원행정처와 법원도서관도 대책 마련 때문에 분주하게 돌아갔다. 결국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박일환 수석재판연구관(대법관 역임)이 호출하여 경위를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드렸다. 9월 6일 드디어 조간신문은 부동산중개수수료 판결 저촉 사실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우울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저녁에 사무실에 외로이 남아 일을 하고 있는데, 변재승 대법관과 이규홍 대법관이 제3부 합의가 늦게 끝났다고 하면서 밤 10시 반경에 저녁을 먹는 자리에 부르기에 따라가서 술을 마시며 저간의 사정을 설명 드리고 위로를 받았으나, 술이 사실을, 나의 실수를 가려줄 수는 없는 것이다.
9월 7일에는 신문 사설에서까지 문제를 삼으니, 그러한 대법원의 명예 실추로 인하여 나는 정말 곤혹스러웠다. ‘어떤 문책도 달게 받아야지.’ 그래서 대법관님 귀국 후에 보고할 경위보고서를 미리 작성해두었다.
혼란 주는 대법원 ‘복비’판결(경향신문 사설)
법정한도를 초과해 받은 부동산 중개수수료에 대해 대법원이 불과 1년여 사이에 정반대의 판결을 내놓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법정수수료 초과분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한 대법원이 엊그제 판결에선 되돌려주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사 사안에 대해 2개의 배치되는 판례가 병존하는 셈이니 하급법원은 물론 부동산중개소, 거래당사자 모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새로운 판결은 부동산중개소의 초과 수수료 계약에 대해 ‘규정을 어겼으므로 원천무효’ 라고 해석함으로써 지난해 유사 사례에 대해 ‘규정을 어겼더라도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는 할 수 있지만 약정 자체는 유효’ 라는 판례를 뒤집었다. 새 판결에 대해서는 중개료 초과 수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일반시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토록 해줬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문제는 이번 판결이 ‘판례 변경은 대법원 합의체 심판에 부쳐야 한다’는 법원조직법을 위반한 채 이뤄졌다는 점이다.
새 판결이 중대한 절차상 결함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법원 측은 중요 판례만 수록하는 판례공보에 지난해 사례가 빠져 있어 판례 변경인 줄 모른 채 판결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불과 1년여 전의, 그것도 일반인들의 정서와 동떨어지게 내려진 ‘한도 초과 수수료일지라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가 중요치 않아 공보에 실리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공보에 빠졌다고 이를 재판부가 전혀 몰랐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사법정의 실현의 최종 보루이자 사법부의 총본산이다. 대법원에서의 정반대 판결이 허술한 판례 관리 때문에 나왔다면 심각한 문제다. 전체 판결의 15% 남짓만 수록된다는 법원공보수록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즉각 보강해야 할 것이다. 판결문과 반대의 선고가 나오고 선거법 위반소송에서 엉뚱한 투표함을 보존케 하는 등 하급법원의 잇단 실수가 이를 감독해야 할 대법원의 안이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철저한 자기점검이 필요한 때다.
대법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중앙일보 사설)
대법원이 최근 법정한도를 초과하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종전과 전혀 상반된 판결인데도 대법원이 법원조직법에 명시된 전원합의체에 의한 판례 변경 절차를 무시한 것은 잘못이다.
담당 재판부가 종전 판례가 있는 줄 모르는 바람에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부동산 중개수수료 과다 공방은 주변에서 흔히 있는 시비다. 또 법정 중개수수료가 지나치게 낮다는 이유로 초과 지급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게 현실이다. 그만큼 관련자가 많고 국민 생활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판결 결과가 관심거리였다.
판결 내용도 획기적이었다. 무엇보다 과다 수수료 거래 관행에 명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중개업자들의 반발과 지나치게 수수료를 많이 지급한 사람들의 줄소송까지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건을 판결하면서 법 이론이 상반된 종전 판례를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중개업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초과 수수료도 반환할 의무 없다’는 내용의 지난해 3월 대법원 판결을 정작 상고심 재판부만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 되는가.
또 이번 사건 주심 대법관이 지난해 3월 판결 당시 재판장이었다니 더더욱 어이가 없다.
대법원은 어떤 경우라도 판결에 실수나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는, 명예와 권위의 상정 기관이다. 대법관마다 중견 법관 3명씩을 재판연구관으로 두고 있고 20여 명의 별도 재판연구관을 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대법관 한 명이 판결 사건만 연 1천 3백여 건씩 처리해야 할 정도로 업무량이 과중한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사건 처리를 이처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법원의 착오는 사법부 전체의 명예와 직결된다.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법원은 제도적인 개선점을 마련해야 한다.
두 가지 ‘복비’ 판결의 암시(서울경제신문)
부동산 중계업자가 법정 중개수수료(복비) 한도액을 넘는 수수료를 받았을 경우 이를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상식을 확인한 것이다.
복비는 거래금액에 따른 법정요율은 있으나 대개는 매매자와 중개인 사이에 협의로 결정되는 예가 많다.
그래서 특히 투기거래일 경우 법정요율은 무시되고 거래자와 중개인 간의 담합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런 거래이므로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영수증 처리가 안 되는 대표적인 영업분야로 꼽히고 있다.
이번 판결에는 그 같은 문란한 거래질서를 바로잡으라는 시대적 요청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지난해 3월의 유사 사안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상충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이 같은 사안에 대해 반대의 판결을 내려야 할 경우 전원합의로 결정해야 하는데 지난번처럼 단독판결을 함으로써 두 개의 판결이 모두 효력을 갖게 된 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된 원인이 대법원의 판례 관리의 부실로 인해 작년 판례를 참고하지 않은 채 내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대법원의 권위와 신뢰를 크게 손상시킨 일이다. 하루 속히 전원합의 판결을 통해 통일된 판결을 내려 혼란을 없애야 할 것이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복부인이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매매하면서 자발적으로 수수료를 더 주고 나서 나중에 초과금액에 대한 반환을 요구한 것이므로 중개업자의 반환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합리성은 있다.
이와는 달리 이번 판결은 중개업자의 위계에 의해 매도자가 수수료를 부당하게 더 낸 사건이므로 반환판결은 당연하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반환의무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여지는 있겠으나 이번 판결의 핵심은 위계 또는 강박의 소지가 없더라도 법정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위법으로 봤다는 점이다.
뒷날 반환소송을 당할 염려가 있으면 중개업자는 더 달라고도 하지 말고, 더 줘도 받지 말라는 취지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부동산 거래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복비의 영수증 처리가 정착돼야 하지만 이번 판결로 복비영수증의 이중처리만 더욱 부채질할 우려도 크다.
중개업자들이 수수료를 올려 받으려는 것은 요율이 너무 낮은데도 원인의 일단이 있다고 본다. 외국에서는 중개수수료가 거래가의 6%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0.8%~0.15% 에 불과하다.
중개질서의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면 요율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올리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중개수수료도 세금에 못지않게 매매 쌍방에 부담이 되게 하는 것도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그 사이 추석 연휴가 지나고 9월 23일 출장을 가셨던 대법관이 출근하였다. 아침에 연구관 셋이서 인사 가니 중개수수료 보도사건을 가장 먼저 물으시기에, 미리 작성해둔 <경위보고서>라는 제목의 보고문건을 드렸다.
면책이냐 문책이냐가 관심사였는데, 설령 면책이라고 해도 내 스스로 재판연구관 업무에 전념하기에는 사실상 자신감을 상실하였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그 날 처분만 기다리며 구내식당에서 2,500원짜리 저녁식사를 하다가 법률신문 정성윤, 박신애 기자를 만나니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 기자가 위로 주를 사겠다고 하여, 일을 마무리하고 20:30경 만나기로 하고, 사무실로 가기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하필 그 때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기술자가 올 때까지 그 안에 약 20분 동안 갇히게 되었다.
그 속에서 기다리면서 기독교방송 김진오 기자가 전에 내게 한 말이 기억났다. “자네 아니어도 법원에 대법관 할 사람 넘쳐 나고, 법원은 너 없어도 잘 굴러 갈 것이다.”
그래서 캄캄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리 사직원을 마음속으로 써보았다.
“저는 일신상의 사정으로 법관직을 사직하고자 하오니 청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장판사 황정근”
이 일을 경험하면서 그 후에는 더더욱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사건 하나하나를 신중히 검토하여 보고하였으나, 나는 재판연구관으로서 이미 겁을 먹고 있었고 자신감이 현저히 상실된 나의 모습을 보면서 2004년 2월이 되어 대법원을 떠날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말이 씨가 되었는지 2004년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위와 같은 내용으로 사직원을 써서 실제로 제출하였다.
법관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평생을 바치려던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임기 도중에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직을 한 나를 보고, 어느 친구는 “너는 fortitude가 부족하다.”고 평하였다.
<경위보고서>
대법관님 부재중에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여 그 저간의 사정과 경위를 보고 드립니다. 문제의 판결은 다음 2개의 사건입니다.
①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0다54406,54413 판결
② 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70972 판결
9월 4일(대법관님 출국일) 위 ①판결 선고 직전에 제가 공보관(오석준 판사=법대 동기)에게 본 판결 선고사실을 알려준 것이 발단입니다. 그것이 이렇게 큰 사태로 발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결론적으로,공보업무를 적극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제가 선의로 나선 것이 이번 사태의 확산 전개에 악영향을 끼친 결과가 되었습니다.
본 연구관이 송무국 근무 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송무심의관이 중요판결을 놓치면 보도가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대법원판결 선고 직후에 송무심의관실에 판결원본이 회부되면 송무심의관들이 나누어 급하게 중요판결을 선별하고 그 요지를 뽑아 행정라인으로 보고하며(법률신문 판례속보란에도 그대로 제공하고 법원전산망 게시판에도 등록) 공보관에게 공보가치가 있는 사건을 알려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경험이 있는 본 연구관은 이번 판결이야말로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관심도에비추어 대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로서 그 보도가치가 A급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송무심의관이 이번 판결을 중요판결 선별 시에 누락시키면 일체 보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노파심에서 공보관에게 ‘본 사건의 경우 중요판결이고 보도가치가 있으니 공보업무에 참고하라’고 하면서 본 사건 사건번호를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최근 아파트 값 급등으로 인한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나오는 단계에서 이번 판결이 가지는 영향력과 시의성 동에 착목하고 홍보 필요성이 있다고 제 나름대로 판단한 것입니다.
연구관으로 근무한 지난 6개월 중 처음으로 공보관에게 공보를 부탁한 사건입니다.
공보관은 법정에 들어가 판결 선고를 확인하고 대법원 출입기자에게 판결 취지를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9월 4일 저녁 공보관이 본 연구관에게 전화하여 작년에 반대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기자의 제보가 있다고 하면서 확인을 요청하였습니다.
브리핑을 받은 기자 중 하나가 본 판결에 대한 대한부동산중개업협회의 공식반응을 취재하고자 그 곳에 전화를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작년에 반대 취지의 판결이 선고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중개업협회에서는 고문변호사가 공인중개사들 교육 시 자기들에게 유리한 작년 판결을 금과옥조로 가르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본 연구관은 처음에는 아마 제가 검토보고서 12쪽에서 심리불속행 상고기각으로 끝난 사건으로 보고했던, 대법원 2002. 3. 30. 선고 2002 다9715 판결을 들먹이는 것이겠지 하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하였으나, 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70972 판결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검색하여 보니 종합법률정보에도 나타나지 아니하여 대법원선고판결에 보관되어 있는 대법원 서버 F:/SUN에 들어가 작년 판결문을 찾아본바, 과연 반대취지의 판결이 작년에 선고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박병대 송무국장을 비롯하여 송무심의관들이 나서서 양 사건의 재판기록을 찾아 과연 상반된 판결인지 여부를 검토하여, 전 사건과 구체적인 사안이 다르다는 공식입장을 기자단에게 브리핑하였습니다만, 판지가 상반된 것임은 부인하기 어려워 기자들을 설득하는 논리로서는 부족하였습니다.
본 연구관도 검토보고서를 송무국장에게 송부하는 등으로, 이번 사태의 진상 파악에 협조하였습니다.
작년 판결을 알게 된 기자들이 판례저촉에 따른 절차 위반과 대법원의 실수를 정면으로 보도할 태세를 보이고, 특히 대법관님이 작년 사건의 재판장이라는 사실까지 알고서는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보관이 이번 사건 검토보고를 한 연구관이 황정근이라는 사실을 기자단에 알리면서까지 보도통제를 시도하고 본 연구관도 안면이 있는 기자들에게 판결저촉 문제보다는 판결취지를 앞세워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판례 저촉 문제가 언론에 부각되면 본 연구관이 책임이 있으니 내 얼굴을 봐서라도 도와 달라는 취지로 설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방송 3사는 판결취지만 보도하기로 하여 다행히 수습되었으나, 신문은 막지 못하였습니다.
기자단은 9월 6일(금요일)자에 풀로 기사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9월 5일 법원행정처에서는 대법원에 근래 보기 드문 악재가 터진 것으로 보고 사태수습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법원도서관(조사심의관 김소영 판사)에서도 작년 판결이 전산등록에 누락된 경위를 조사하였습니다.
본 연구관의 검토보고서를 선임재판연구관실에 송부하였습니다.
작년 판결의 검토보고서가 검색되지 아니하여 제가 경위를 확인한바, 작년 사건은 정식으로 연구관에게 사건이 배당되지 아니하였고(따라서 연구관검색시스템에도 미등재),연구관이 대법관님의 지시에 따라 상고기각 의견서만 쓴 것으로 추측됩니다.
재판연구관이 게다가 작년 판결 선고 후 판례공보 자료 A(대법원판결집 수록),C(판례공보 수록),D(종합법률정보 등록),X 등급 분류시 X로 처리하여 전산등록에서 누락되었습니다. 재판연구관이 X 등급으로 분류하면 조사심의관도 대개 그대로 따릅니다.
작년 판결 당시 구 소개영업법에 관하여 이미 무효라고 판시하였던 대법원 1987. 5. 26. 선고 85 다카1146 판결,1976. 11. 23. 선고 76 다405 판결 등을 검색, 검토하지 아니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때 위 소개영업법 관련 판결이 검색되었다면 그런 판결이 선고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9월 5일 저녁(및 익일 아침) 방송 뉴스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9월 6일 조간신문에 일제히 대대적인 보도가 나왔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작년 사건의 원심판결은 정형식 연구관이 주심판사였는데, 제가 검토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정형식, 김종필 판사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하였을 당시 정형식 판사가 작년 사건의 원심판결을 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본 연구관이 검토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하급심의 실무경향을 판결관리시스템을 통하여 확인하여, 대법원 2002. 3. 30. 선고 2002 다9715 판결의 원심판결(단속규정으로 해석하고 신의칙으로 감액한 소액사건)은 찾았었는데, 작년 사건의 원심판결은 그 당시 검색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몇 가지 실수가 중복된 것이지만, 이것이 언론에 불거지게 되고 대법원 및 대법관님께 엄청난 누가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가 경솔하게도 공보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이 근본원인이라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대한중개업협회 차원에서 재심 등이 제기될 공산이 크다고 보이고, 결국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언론의 논조나 국민정서를 비롯하여 제반 사정을 감안하면 저의 판단으로는 이번 판결이 전원합의체에서 설득력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으로 대법관님 부재 중 사태를 간략하게 보고 드립니다. 저의 경솔함과 실수로 빚어진 이번 사태에 대하여는 응분의 책임을 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