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체제와 법치주의
“3․26사변”이라 부르자

6․25사변 60주년을 불과 3개월 앞둔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초계함(PCC)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1달이 지났다. 선체가 인양되면서, 서서히 사건의 윤곽과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나는 사건 발생 뉴스를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북(北)에 의한 무력공격이라고 생각하였다.
북의 전과(前科) 때문만은 아니다. 시골 동네 어느 집에 도둑이 들면 평소 소행이 불량하고 손버릇 나쁜 바로 그 아이를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민완형사가 강력범죄 발생 후 순식간에 용의자를 떠올리고 용의선상에 올려놓는 날카로운 심증도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용의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제 수집되는 객관적 물증에 따라서는 북은 용의자 단계를 넘어 입건(立件) 후의 피의자, 나아가 기소(起訴) 후의 피고인의 자리에 앉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북의 무력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나의 심증이 물증에 의해 입증된다면, 이는 “3․26사변”으로 명명되어야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무력을 쓰는 일을 ‘사변(事變)’이라고 한다.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은밀한 잠행을 통하여 초계 중인 군함을 기습적으로 무력 공격함으로써 46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니, 이는 단순한 테러나 사건 또는 해전이 아니라, 명백히 사변인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사변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 그 중대사태의 성격과 수위에 걸맞은 대응조치, 다시 말하면, ‘상응조치(相應措置)’가 필요하다. 상응조치는 순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정치적․외교적․경제적․군사적 상응조치를 다각적으로 하나하나 검토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우리는 냉철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저들과 달리 보편적인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문명국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광범위한 증거수집과 전문가의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총력을 기울여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피의자를 밝히는 일에 우선 매진해야 한다. 여기서는 누구의 소행인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고, 이에 대한 우리 군의 방어태세가 적절하였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은 시간을 두고 해도 된다.
책임소재가 가려진 다음에는, 제재와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또한 당해 책임자의 사죄 내지 사과를 받아내야 하고, 유무형의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사과와 배상의 수준에 따라 제재와 처벌의 수위가 낮아질 수 있겠지만, 종래처럼 개전(改悛)의 정이 전혀 없다면, 보다 강력한 제재와 응징에 직면한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한다.
그 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재발방지책의 강구다. 다시는 이와 같은 사변을 일으키지 않도록 국제적으로 담보되는 실효성 있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그와 같은 약속을 받아내는 데서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로 나아가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아내야 한다.
물론 우리 내부적으로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장비를 보완하는 등 징비(懲毖)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혹여 안보 공백이 있었다면 돈이 들더라도 이를 대폭 보완하여야 한다.
국민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듯이 내 돈을 기꺼이 낼 각오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영토와 영해와 영공을 물샐 틈 없이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2000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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