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지방자치단체의 행위, 지방자치단체장의 행위

먼저, 특별기일까지 지정하여 여러 기일에 걸쳐 사건을 소상히 심리하신 재판장님과 판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변론요지서로 정리하여 제출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서는 주요내용만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을 변론하면서 느낀 본 변호인의 소견으로는, 이 사건은 기소한 것 자체가 다소 무리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공소사실 제1의 가.항은 피고인이 2007년 7월 16일 '익산대 전북대 통합합의서 이행촉구 익산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출범식 후 사무실에서, 대책위원들에게 '운영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말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당해 선거구 안에 있는 단체'인 대책위에 금전 제공을 약속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공소사실 제1의 나.항은 피고인이 최〇〇, 장〇〇 및 익산환경운동연합 오〇〇 사무국장과 상의한 바에 따라 김〇〇, 유〇〇가 대책위 운영경비로 사용한 돈을 변제하기 위하여 2007년 12월 28일 농협 익산시지부를 통하여 익산환경운동연합 계좌로 3천만원을 송금함으로써 김〇〇, 유〇〇, 오〇〇에게 기부행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기부 받은 상대방이 대책위가 아니라 김〇〇, 유〇〇, 오〇〇라고 기재한 것은, 아마 대책위가 이미 해산되고 없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환경운동연합 통장에 돈 3천만원이 입금될 당시나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은 대책위가 기부행위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공소사실 제1의 가.항입니다. 피고인은 공직선거법에서 말하는 기부행위의 약속으로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대책위 출범식 후 시장으로서 의례적인 격려성 인사를 하였던 것은 기억하지만 공소장 기재와 같이 '대책위의 운영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말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 사건 진정인은 피고인이 그러한 발언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는데,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러한 발언은, 익산시에서 행정적으로 가능한 지원방법이 있다면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지원해 주겠다는 취지로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것이면 몰라도, 공직선거법에서 말하는 기부행위의 약속으로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전북대 총장이 2007년 7월 5일에 익산대-전북대 통합합의를 파기한 후에 급하게 발족한 임시단체가 대책위입니다. 그 현판식을 마친 후 시장이 대책위원들이 모인 사무실에 참석하여 격려하면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형태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명색이 시장인데 그 자리에서 대책위원들에게, '시장인 나는 경비문제는 일체 모르겠으니 대책위에서 알아서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사건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도 않고, 사회상규에 비추어 그 위법성도 없습니다. 다음, 공소사실 제1의 나.항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경위가 어찌 되었건, 지방자치단체장 개인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인 익산시와의 협의 하에, 농협 익산시지부가 공식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한 이 사건 금품제공행위는 피고인의 기부행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기부행위는 그에 의한 기부의 효과를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돌리려는 의사를 가지고 금품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그 출연자가 기부행위자가 되는 것이 통례이고, 그 기부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주체인 기부행위자는 항상 그 금품의 사실상 출연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출연자와 기부행위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금품이 출연된 동기 또는 목적, 출연행위와 기부행위의 실행 경위, 기부자와 출연자 그리고 기부 받는 자와의 관계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기부행위자를 특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7. 3. 30. 선고 2006도9043 판결 등). 이 사건 일련의 행위는 익산시의 행위일지언정 익산시장 개인의 행위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기부행위자와 출연자가 다른 경우인데, 피고인에게 이 사건 기부의 효과를 자신에게 돌리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공직선거법 제113조가 금지되는 기부행위의 주체로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정당의 대표자, 후보자, 배우자'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규정한 것은, 다른 주체들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장이 개인의 자격으로 기부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이지, 그가 대표자로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기부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정당의 대표자의 경우도 그 개인이 관여된 기부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이지 단체로서의 정당이 하는 기부행위까지 금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 외에 이들의 배우자도 행위주체로 열거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이 점은 명백합니다. 시장 개인의 기부행위로 인한 공직선거법 제113조 위반 죄는 i) 행위의 동기, 목적, 전후 상황에 비추어 당해 행위가 단체로서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시장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사정이 존재하고, ii) 상대방 역시 제공자가 단체로서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시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수령하여야 성립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행위를 지방자치단체의 장(개인)의 기부행위로 의제할 수는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위가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행위로 의제될 수 없음은 단체법의 법리상 당연하며, 지방자치단체가 단체적 의사로써 한 행위는 지방자치단체의 장(개인)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공직선거법상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기부행위로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직선거법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운영하면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행위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행위로 의제되어 공직선거법의 규제 범위에 포함되게 됩니다. 공직선거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시켜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행정행위를 지방자치단체장의 기부행위로 보아 기부행위제한규정을 적용하게 된다면,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주민들에 대한 모든 행정행위가 공직선거법에 위반하는 위법행위가 되고 마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논리를 일관한다면, 지방자치단체가 관할구역 내에 놀이터를 만들어주거나, 가로등을 설치하여 주거나, 정자와 같은 휴식 공간을 만들어주는 행위도 지방자치단체장의 특정 아파트, 건물, 마을에 대한 기부행위가 되어 공직선거법상의 범죄행위에 해당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행위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기부행위로 간주되어 공직선거법상 제한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위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장의 적극적 개입이 있어 이를 지방자치단체장 개인의 행위로 볼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 즉 i) 금품의 제공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이름이나 직함을 밝혀서 이루어진 경우, ii)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 금품 제공을 하거나, 최소한 금품제공장소에 참석한 경우, iii) 지방자치단체장의 홍보 등 선전행위가 수반된 경우나 이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하는 것이 형법의 자기 책임의 원칙에 부합하고, 공직선거법의 지나친 확장 적용을 막는 해석이 될 것입니다. 이 사건 행위는 익산시의 정상적이고 정당한 행정의 수행으로서 시행된 것이며, 그 비용도 전부 피고인이나 익산시가 아니라 농협(익산시지부)이 부담하였고, 그 계획도 익산시 공무원들과 농협에 의하여 수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금원 제공의 성격과 시행 주체, 시행 과정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구별되는 개인으로서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자기책임의 원리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 금원을 제공받은 자들도 이 사건 금원을 농협 익산시지부의 돈으로 인식하였을 뿐 시장인 피고인 개인의 금품제공행위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형태의 하나로서, 역사적으로 생성된 사회질서의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양형사유에 대해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사건은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자치단체장의 전형적인 선심성 기부사건이 아닙니다. 공직선거법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기부행위를 금지하는 취지가 무엇입니까?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고 선심성 행정을 통하여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왜곡하고 판단과 선택에 그릇된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만약 피고인이 3년 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의 재선을 내다보고 시민궐기대회에 나온 대책위원들이나 시민들에게 뭐 우산이라든가 무언가 선물을 돌렸다거나 경품을 걸었다면 선심행정을 했다고 비난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농협이 출연한 돈은 잘 아시다시피, 대책위의 궐기대회 행사 비용을 사전 지출한 것을 사후에 대신 변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여 실질적으로 보면 대책위 경비에 충당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무엇보다 동기와 목적이 너무나 순수합니다. 이 사건은 갑자기 등장한 익산시의 긴급현안 때문에 출범한 대책위의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를 먼저 지출한 후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방안을 찾다가 발생한 것입니다. 대책위 활동도 성공적으로 달성되어 익산시와 익산시민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대해 익산시민 누구나 잘 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법상 지방자치단체가 무엇입니까? 주민의 이익과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라고 존재하는 법인입니다. 시장은 무엇입니까? 시의 대표자로서 시의 사무를 총괄하는 시장이 시민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여야 합니까? 이번 대책위 같은 단체를 지원하는 것과 같이 지역의 현안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익산시나 시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대책위 경비를 예비비나 추경으로 집행하였던들 시의회에서 그대로 통과되었을 사안입니다. 어떻게 보면, 절차적 문제만 없었다면, 익산시의 정식예산으로 집행해도 충분히 가능했던 사안이라고 봅니다. 그 당시에 선관위를 의식하지 말고 아예 익산시 예산으로 지출했다면 과연 기소할 수 있었겠습니까? 본 변호인이 보기에는, 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면으로 처리하였을 것이지, 피고인이나 시청 관계자들이 왜 선거법을 의식하여 무슨 나쁜 짓을 숨어서 하는 듯이 농협 익산시지부의 기부금으로 우회 지출하였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입니다. 상벌, 상선벌악, 신상필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한 것에 상을 주고 잘못한 것에 벌을 주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법적 평가를 떠나서 피고인에게 상을 주어야 할 사건이지 벌을 주어야 할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그 순수한 동기와 경위를 깊이 참작해야 할 그런 사건입니다. 나아가, 피고인은 선거법위반은 물론이고 아무런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이 사건은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2년 이상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선거 관련성이 거의 없습니다. 실질적인 지원을 받은 대책위는 선거 2년 전에 이미 해산된 단체로서, 이 사건 기부행위가 2010년의 당해 선거에 무슨 영향을 주었다거나 선거의 공정성을 해쳤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건대, 이 사건은 다른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보더라도 피고인의 시장 직을 박탈하는 형을 선고할 만한 그런 중대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 본 변호인의 생각입니다. 모쪼록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경위, 법리적 문제점 등을 면밀히 살피셔서 피고인이 익산시장의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변론에 갈음할까 합니다. <2011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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