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직면하여 사법시스템도 이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어야 함은 다언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전반의 전문화 추세와 분쟁의 복잡다기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재판의 전문화는 불수불가결한 시대적 요청이다.
그 동안 사법부가 전문법원을 신설하고 전문재판부를 확충하는 등으로 고품질 재판을 하려고 노력하여 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1998년 특허법원과 행정법원 신설 이후 각각의 특장을 살린 효율적인 사건처리와 적극적인 권리구제 노력은 양과 질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재판의 전문화라는 기본 방향에는 찬성하지만, 몇 가지 보완할 점이 있다.
전문법관은 전문지식만을 재판에 투영하기 쉬워 법체계 전체의 시야에서 넓게 판단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미법계에서는 법관전문화보다는 전문가의 지식을 재판에 반영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는 의미를 한번 음미해볼 만하다.
그들은 전문법관은 가치 판단의 유연성과 역동성이 저하되어 전문분야에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재판에서도 크로스 체크(cross check)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하며, 판단에 있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특정유형의 재판을 1개 재판부에 몰아서 처리하는 방식은 재고하여야 한다.
전문법관의 조기 퇴직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터인데, 그러한 문제를 의식하여 인사관리 차원에서 전문법관의 보직을 전문재판부에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예컨대 특허법원, 지적재산권부, 지재 전담 공동연구관으로 연속 근무함에 따라 생기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동일쟁점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진 고정관념이 다른 자리에서 관련사건을 처리할 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동일쟁점사건을 재판한 후 다른 자리에 가서 관련사건을 배당받아 처리한다는 것은 언뜻 보면 매우 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예단을 가지고 재판에 임한다는 점에서 보면 적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에 동일쟁점사건을 다룬 법관은 관련사건을 맡게 되는 경우 재배당을 하거나 스스로 회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법원의 전문성은 공동재판연구관의 전문화로 대처하여 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대법관의 전문성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정예 대법관을 두는 구조에서는, 예컨대 특허사건에 대한 전문성 있는 대법관이 부족하면, 전문법관으로 구성된 연구관의 영향력이 커질 소지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처리 행태가 고착된다면 cross check 기능의 흠결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문제점을 직시하여 대법관 스스로가 전문재판에 대한 관여도를 제고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