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의 기도
누정(樓亭)이 있는 풍경

1970년대 강남개발의 상징인 압구정동 아파트의 재건축 청사진이 최근 발표되었다.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가 지었던 정자인 ‘압구정’은 지금은 사라지고 아파트단지 안에 터만 남아 있다. 강남구의 건의에 따라 서울시가 아파트 재건축을 할 때 한강변에 예전의 압구정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옛 압구정의 모습은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으로 남아 있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압구정만이 아니라, 울산의 태화루, 광주의 희경루, 양산의 쌍벽루, 김해의 연자루도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복원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누정 문화가 유달리 발달하였다. 누정은 소통과 사색의 공간이다. 서울 경회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 청송 찬경루, 안동 영호루, 함양 광풍루는 그 지역의 상징이다. 나는 10여년 전 지방 근무 당시 촉석루에서 바라보던 남강의 물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전국 곳곳에 우뚝 솟아 있던 많은 누정들이 전란으로 불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주 청심루, 거창 탁영정, 대구 금학루, 산청 환아정, 상주함창 광원루, 선산 월파정, 성주 안언정, 언양 쌍수정, 영월 광원정, 영천 명원루, 영해 해안루, 흥해 망진루는 역사 속에만 존재한다. 사라진 누정이 있었던 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아름다운 이름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제 되살려야 한다. 각 지역마다 ‘누정 복원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삭막한 빌딩과 아파트 숲 속에 누정을 하나씩 복원하거나 새로 짓는다면 그곳의 품격이 달라질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누정이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누정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선수촌아파트 중앙에도 정자를 지었다. 반형도고(班荊道故), 옛날에 길에서 친구를 만나면 싸리나무를 꺾어 펴고 앉아 옛정을 나누었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동네 어귀마다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하나씩 지어놓고, 거기에 둘러앉아 가족, 친구, 이웃과 옛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를 가질 수는 없을까? 다행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 있어, 가끔 올라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기도 한다. <2011년 8월 12일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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