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의 기도
법률 이름 짓기

판사 시절 이야기다. 판결문에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하 ‘선거법’) 제250조`라고 쓰면서 의아해 했다. 왜 법률 이름은 이렇게 길어야 하나? 독수리 타법을 쓰는 나로서는 타이핑하는 데 힘들었다. 다행히 몇 년 전에 「공직선거법」으로 개명했는데 아직도 불만이다. 그냥 `선거법`이라고만 하면 되었을 것을. 그리고 왜 거기다 힘들게 문자표를 찾아서 `꺾음쇠` 「」까지 입력해야 하는지. 선거법만이 아니라 현행 법률이 1300개에 육박하는데, 대개 이름이 너무 길고 너무 자주 개명을 한다. 얼마 전 법전에서 `산림법`을 찾았는데 없었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개명을 해버린 것이다. 행형법, 토지수용법, 회사정리법, 증권거래법, 부동산중개업법. 수십 년 동안 익숙했던 이름들인데, 이제 법전에 없다. 명색이 법학도로 30여 년 살아온 나도 혼란스럽다. 드라마를 보면 고시생이 나온다. 흔히 굵은 뿔테안경에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을 외워야 한다. 이름이란 부르기 쉽고 쉽게 쓰고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법률 이름에 그 내용을 구체화하려는 선한 의도를 고려하더라도, 국민이 알기 쉽게 축약해 정해야 한다. 서비스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서비스는 먼저 공직자나 전문가가 스스로의 갑옷과 제복을 벗어버리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이름 하나를 붙일 때에도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친절함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법 생활, 법률 이름 짓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법`을 `상행위, 회사, 보험 및 해상에 관한 법률`로 개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딸애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사람 이름을 외우고 있다.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 <2011년 7월 19일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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