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낸 변호사실에는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제자들이 인사를 오고 꽃을 보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했다. 아내도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스승의 날이 되면 늘 부러웠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제자가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부럽고, 누군가에게 모종의 영향을 줄 수 있는 특권이 부러운 것이다. 사실 가르침이란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아서, 순수한 영혼에 엄청난 파문과 충격을 줄 수 있다. 스승은 그래서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2010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그 해 1월부터 두 달 동안 우리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실무수습을 한 연수원 40기 연수생들이 사무실로 꽃과 카드를 보내왔다. 선생 노릇을 해본 적이 없고 제자가 없는 나에게는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지도변호사로서 밥 사 준 것 외에는 해준 것도 없는데 짧은 인연이나마 잊지 않고 챙겨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변호사님. 추운 겨울에 처음 뵈었는데, 벌써 초여름이네요. 그 때 해주신 좋은 말씀을 평생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소중한 인연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작년 5-6월에 다녀간 사법연수생들은 그 중 한 명이 연말 수료를 앞두고 취업이 되었다고 하면서 한 턱 내겠다고 함께 찾아왔다. 어엿한 법조인이 되고 나서는 제주도 출장을 갔다가 ‘법조선배’가 생각났다고 하면서 특산물을 택배로 부쳐온 ‘법조후배’도 있다.
이번 달에도 법조후배 50명이 우리 법률사무소에 변호사시보로 부임하였다. 이들을 일곱 조로 나눠 변호사 3명이 각 조의 지도변호사가 되어 두 달 동안 지도를 담당한다. 후배들을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다. 전문분야별 강의, 간담회, 법정방청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두 달 동안이지만 변호사의 세계를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엿보고 돌아가도록 한다.
이번에 부임한 시보들은 푸릇푸릇한 사법연수원 41기다. 나의 26년 법조후배들이다.
지도변호사로서 매년 20여명의 연수생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어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줄 것인가. 그럴 때마다 지난 시절 나에게 가르침을 준 법조선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난 26년 동안 내 스스로 부족하거나 아쉬웠다고 느끼는 점을 후배들에게 말해주곤 한다. 내가 겪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이다.
“첫째는, 목표와 꿈을 선명하게 가져야 한다. 법조인이 된 것으로 꿈을 이룬 것이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새로운 큰 꿈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
둘째는, 적성에 맞는 분야를 잘 찾아서 공부를 계속하고 전공분야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필요하면 학위도 취득하고 유학도 반드시 할 것을 권한다.
셋째는,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젊어서부터 등산과 같은 운동을 습관화 하는 것이 좋다.
넷째는, 결국에는 봉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법조인이 된 것 자체가 사회로부터 받은 엄청난 혜택이기에 그 빚을 갚고 되돌려 주어야 한다. 언제든지 공직이 맡겨지면 국가에 봉사할 수 있도록 평소 자기관리를 할 것을 권한다. 누구에게나 행복한 세상의 꿈을 이루기 위한 소명을 깨닫고 봉사와 헌신의 길을 가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중국고사에, ‘돈 10만관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자사로 가고 싶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일컫는다. 법조인으로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가질 수는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윤관 전 대법원장님은 내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님이기도 하고 법조 대선배이기도 한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집에 갔던 당시는 부장판사였다. 그 시절 나와 친구의 장래희망은 모두 법관이었다. 나는 난생처음 판사를 만났다. 여러 말씀을 듣고 용돈까지 받았다. 나도 커서 반드시 판사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로부터 10여년 세월이 흘러 나는 1989년 법무관을 마치고 당시 서소문 덕수궁 돌담 옆에 있던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사가 되었다. 당시에 친구 아버님은 대법관으로 있었다. 바로 부임인사를 갔어야 하는데 내가 워낙 숫기가 없는데다 초임판사가 보기에 대법관은 너무나 높고 어려운 자리라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대법원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던 중 대법원 청사 앞에서 대법관님을 조우하게 되었다.
“임관 축하해. 부장이 누구지?”
“제가 연수생 때 배운 이규홍 부장님입니다.”
“나도 잘 아는데, 많이 배워. 차 한 잔 하고 가.”
초임판사가 된 아들 친구에게 꼭 해줄 말이 있다며 대법관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첫째, 공직자로서 출퇴근 시간을 엄격히 지켜라. 둘째, 와이프가 절대 사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라.”
공직자로서 성실과 청렴, 이 두 가지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때 나에게 구경시켜준 대법관 실에 나는 이제 들어갈 수 없는 재야법조인이 되어 있지만, 법조선배의 그 무서운 가르침만은 법조후배들에게 늘 일화로 얘기해준다. 그것이 26년 선배와 26년 후배 사이, 그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나의 역할이 아닐까. <대한변협신문 2011년 5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