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도 법정기간을 지켜야 한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국회법 85조의2, 86조 3항)에 대한 헌법소원과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심판기간 180일을 도과하여 논란이 일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소송당사자가 법정기간을 어기면 불이익 효과가 바로 생기지만, 국가기관이 법정기간을 위반한 경우 이는 훈시규정으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국가기관이 법정기간을 어긴 데 대해 변호사단체가 국민을 대신해서 엄중하게 감시하고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민사·행정·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도 재판기간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민사소송의 종국판결은 소제기일(1심) 또는 기록접수일(상소심)로부터 각각 5개월 내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사재판이 지연되면 패소 피고의 연 15% 지연이자 부담은 그만큼 늘어난다. 법원의 재판기간 위반으로 피고에게 과중한 지연이자가 부가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처리기간은 법률에 ‘강행규정’이라고 규정되어 있고, 재정신청 사건은 접수일로부터 3개월 내에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를 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형사소송법상 사형집행 명령은 판결확정일로부터 6월 이내에 하도록 되어 있으나, 별도의 사면 조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 이래 법무부장관이 법률을 준수한 예가 없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의 위상 때문이라면 그러한 현실에 맞게 조속히 형소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법기관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보내야 하는 법적 시한은 10월 13일이었으나 이미 도과하였고, 국회가 선거구획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 시한인 11월 13일도 넘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10월 30일자 헌재의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현행 선거구는 연말이면 전부 효력을 상실하게 되어 내년부터 선거구가 없어지는 초유의 헌법공백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한국 민주주의 내지 법치주의의 위기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실효성 없는 규정이라면 그런 규정은 아예 삭제하거나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예외규정을 두거나 기간 연장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회가 법을 만들 때 기한을 어기는 경우에 어떻게 할지에 대해 절차 규정을 두는 일이다. 행정심판의 재결기간은 60일이고, 부득이한 경우 위원장이 30일을 연장할 수 있으며, 연장할 경우 미리 위원장이 당사자에게 알려주도록 되어 있는데(행정심판법 45조), 민소법이나 헌재법도 이 방식으로 개정하여 부득이한 사유로 재판기간을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 재판부가 연장 결정을 하도록 하고 그 사유를 소송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면 재판기간 위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상 예산안 의결기한(12월 2일)을 국회가 종종 지키지 못하자 국회법에 예산안 및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를 신설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법률에 기간을 정한 데는 그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국가기관이 이를 준수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무엇보다도 담당자의 준법 의지가 중요하다.
- 법률신문 2015년 11월 12일자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