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로 가는 길
헌법재판관, 비(非)법조인에 문호 개방해야

어느덧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類例)가 없는 성공의 역사를 썼다. 산업화·민주화·선진화 과정을 마치 로켓이 솟아오르듯이 압축적으로 해치웠다. 그 중 민주화의 상징인 ‘1987년 헌법’에 따라 1988년 9월에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한국 민주주의의 명품이라 할만하다. 작년 10월까지 헌재가 위헌으로 선언한 법률이 무려 470건이나 된다. 법전 속의 장식품과도 같은 헌법을 살아 숨 쉬는 생활규범으로 만들었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120여년 간 20여건의 위헌판결을 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작년의 정당해산 결정을 비롯하여, 수도이전 위헌 결정, 선거구 인구 편차 2:1 결정, 미디어법 권한쟁의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호주제·동성동본금혼 위헌 결정,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 등등.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만 보더라도 가히 온 나라를 뒤흔든 결정을 쏟아냈다.
이제 헌재는 60년 역사를 가진 간통죄의 위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는 간통제나 사형제를 폐지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사법기관이 나서서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 여론에 따라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대의제 원칙에 맞다. 국회가 민감한 이슈를 헌재에 미루는 것도, 헌재가 입법부가 해야 할 일에까지 권한을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사법에 의한 입법(judicial legislation)은 권력분립 원칙을 흔든다.
법전을 보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법조문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도 밤 12시 이전에는 시위가 허용된다. 헌재가 작년에 ‘밤 12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결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시위의 자유라는 법익(法益)도 있지만, 반대쪽에는 공공의 안녕질서와 사생활의 평온이라는 법익도 있다. 충돌하는 법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경계선을 긋는 일은 국회가 할 일이다. 밤 9시를 경계로 하자는 견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헌재가 헌법의 원래 의도보다 더 깊숙이 개입하여 스스로 법률을 만드는 입법부의 흉내를 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정치성 높은 사안을 결정하는 헌재의 재판관 9인은 모두 판사·검사 출신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은 그 특성상 실정법 해석에 평생을 바쳐온 법조인이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헌재가 헌법재판에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제 비(非)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다. 일반국민의 사회적 정의감, 국민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넓은 시야와 탁월한 식견 및 인문학적 소양, 국민과 시민의 인권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창의력, 양자택일 식 결정보다는 독창적이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그리고 ‘전문가 바보’가 아닌 평균적 소인(素人)의 벌크 마인드(하나하나보다 전체를 조망하는 사고)를 수혈 받을 수 있다. 법이라는 망치 하나만 가진 법조인은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보기 쉽다. 4와 5 중 어느 숫자가 큰지는 법조인이 잘 가리겠지만, 4와 5 중 어느 것이 좋은지를 가릴 때에는 비법조인의 지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대법관 6년, 헌재소장 6년을 거친 이강국 전 헌재 소장은 3분의 1 정도는 비법조인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회의장 자문기관인 헌법개정자문위원회도 작년 5월에 헌법재판관 중 법조인은 7명 이하로 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일본 최고재 재판관 15명의 출신을 보면, 판사 6명, 변호사 4명, 검찰관 2명, 행정관 1명, 외교관 1명, 교수 1명이다. 독일 헌재도 16명 중 변호사, 교수, 의원, 공무원 출신을 임명할 수 있고, 8인 재판부 중 판사 출신은 최하 3명이면 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법조인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헌법 제111조 제2항은 헌법재판관은 법관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임명하도록 되어 있고, 헌법 제101조 제3항은 법관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조직법 제42조 제1항과 헌법재판소법 제5조 제1항이 법조인에게만 헌법재판관 자격을 주었다. 비법조인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려면 헌법 개정 없이 법률만 개정하면 된다. 법 개정 후에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의지를 가지고 ‘좋은 헌법 관행’을 정착시키면 된다. 헌법재판에 법조계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달라는 국민적 여망에 부응해야 할 때다. (중앙SUNDAY 2015. 1. 1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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