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로 가는 길
‘좋은 법률 만들기 운동’을 하자

‘법률 인플레’가 심각하다. 현재 법률은 1,300여개인데, 매년 600건의 새 법률이 공포되고 있다. 법전 속의 법률 절반이 매년 성형(成形)을 하는 격이다. 법률이 너무 자주 개정되고, 굳이 법률로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을 법률로 만들고 있다.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도 있다. 법률만능주의는 반갑지 않다. 법률의 잦은 개변(改變)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법의 권위를 손상시킨다. 규제를 신설·강화하거나 예산을 수반하는 법률이 늘어나면 국민이나 기업에게 부담만 지우게 된다.
정부입법과 의원입법을 합쳐 법률안 제출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만 보더라도 제13-14대 국회에서는 법안발의가 1천 건 미만이었다. 그 후 제15대 1,951건, 제16대 2,507건, 제17대 7,489건으로 점차 늘어났다. 그러다 제18대에서는 무려 13,913건이었다. 그 중 의원입법이 12,220건이다. 제19대 국회는 아마 2만 건을 넘을 것이다. 1년에 5천 건의 법안이 쏟아진다는 얘기다. 그 많은 법안을 충분히 숙의(熟議)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1980년대 말 민주화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부상하게 되고 시민단체들이 의정활동 평가에 나서게 되었다. 시민단체는 의정활동 평가에서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 건수를 평가의 잣대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의원들은 건수 채우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법안 발의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로 평가가 이루어지다보니 ‘원 포인트(one-point) 법안’까지 등장하고 있다. 몇 글자만 고치는 법률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동산실명제 하에서 종교단체의 명의신탁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률까지 통과되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발 벗고 나섰다. 지난 8월 26일 제22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가 열렸다. 그날 변협은 ‘의원입법의 각종 난맥상으로부터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변협 산하에 입법평가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활동에 대한 평가를 담은 입법평가백서를 발간함으로써 입법 바로 세우기를 실현한다’고 선언했다. 변협에서 입법참여·입법감시 활동을 하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변협이 입법 바로 세우기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변호사 본연의 사명에 부합한다.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는 ‘사회질서의 유지와 법률제도의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변호사법 제1조). 변협이 전문가단체로서 국가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냈다. 사실 좋은 법 만들기야말로 좋은 법 집행·해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좋은 법이 만들어져야 좋은 법 해석이 가능하다. 법관의 잘못된 판결이 백배의 해악을 끼친다면 국회의 잘못된 입법은 국민에게 천배의 해악을 가져온다고 한다.
사법부의 재판과정을 엄격하게 규율하는 ‘소송법’이 있듯이, 입법부의 입법과정을 정치(精緻)하게 규율하는 ‘입법절차법’을 마련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입법절차법 제정, 입법평가제·헌법영향평가제 도입, 입법자문위원회 설치와 같은 입법절차 개혁이 시급하지만, 입법권을 거머쥔 국회가 스스로 빠른 시일 안에 제도개혁에 나설 것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국민이 입법감시에 나서야 한다. 시민단체의 의정활동평가도 법안 발의건수의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논문 건수를 가지고 교수평가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과 같은 이치다.
법률안에 대해 사전에 전문가적 검토를 거쳐 의견을 내고 여론을 환기하는 일은, 1만 4천여 회원을 거느린 전문가단체인 변협이 나서서 하는 것이 실효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법률안이 전체 법체계와 법치국가 원리에 부합하는지, 이해관계자나 특정집단의 ‘부분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에 맞는 것인지, 헌법정신과 정합성(整合性)을 갖추고 있는지를 입법과정에서 미리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변협이 입법과정에서 입법평가를 치밀하게 하고 입법 후에는 입법활동에 대해 양적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를 하는 등으로 좋은 법률 만들기 운동을 선도함으로써 국민의 박수를 받았으면 한다. (중앙SUNDAY 2013. 9. 2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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