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적 자원에 의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절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느 선진국보다도 신속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문제는, 사회갈등과 관련된 중요 사건에 대한 재판이 다소 지연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관련 헌법소원사건(2010헌바474)은 3년이 넘도록 처리되지 않고 있다(본보 2월 10일자).
대한민국의 위기요소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갈등지수 세계 2위가 말해주듯이 ‘사회갈등’ 문제이다. 사회갈등지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면 GDP가 20% 늘어난다고 한다. 사법기관이 적시에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사회갈등 해소에 앞장서는 것은 국부를 창출하는 일이다. 사회갈등 해결능력을 제고하고 공공선(公共善)을 창출하는 것은 공화주의(共和主義)의 핵심기제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에서 필수조건이다. 사회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공선이다. 공정하고도 신속한 재판이 필요한 이유다.
격렬한 쟁점을 동반하는 사회갈등과 이해관계의 대립은 대화와 소통과 타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일수록 행정부나 입법부가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그러기에 공적 권위를 가진 사법기관의 결정으로써 해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법기관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공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전관예우의 의심 해소, 평생법관제 정착,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화 등을 통한 재판의 권위 확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법기관은 사회갈등을 조속히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무작정 뒤로 미루거나 할 것이 아니라 비판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재판에 대한 외부의 과도한 비난과 개입도 자제되어야 하지만, 어차피 높이 자라는 나무에는 높은 바람이 불기 쉬운 것이다. 주어진 역할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의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갈등 해결이라는 사법의 본령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헌정체제 내에서 차지하는 사법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바로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정치권이 극한대립과 통치불능의 상태로 갈등해소에 실패하는 위기의 시기일수록 사법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특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사건 중에서 사회갈등의 해결에 직결되는 사건의 처리는 결코 실기해서는 안 된다. ‘사법은 신선할수록 향기가 높다’는 베이컨의 경구를 되새길 때다. (2014.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