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로 가는 길
법률에 대한 무지의 소치

상대방의 준비서면에서 나온 표현 중 가장 큰 상처를 받았던 말은, 나의 법리 주장이 “법률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일갈 당한 경우였다. 졸지에 무식한 변호사가 되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자까지 괄호 안에 친절하게 넣어서 ‘무지(無知)’라고 할 것까지야 없었을 텐데 말이다. 청년 판사 시절에 딸의 출생신고를 하는데 단 하루를 늦었다. 출생신고기간을 잘못 계산하여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 날에 갔던 것이다. 법관이라고 말도 못하고 시말서를 적어냈다. “법률에 대한 무지의 소치로 늦게 신고하였으니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공무원이 불러주는 대로 시말서를 써냈음에도 과태료는 1만원인가를 냈다. 그 때부터 ‘법률에 대한 무지’는 시작되었다. 날짜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한다. 실무변호사는 불변기간 마감 하루 전을 사실상의 마감일로 생각하고 달력에 적어놓고 일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날짜 얘기가 나오면 부끄러운 경험이 생각난다. 고등법원 특별부 배석판사를 할 때다. 토지수용 이의재결 취소소송은 3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 1심 법원에서 제소기간이 하루 지났는데도 소를 각하하지 않고 본안판결을 한 것을 발견했다. 다시 계산해 봐도 제소기간이 지난 것이 틀림없다. 합의를 할 때 제소기간이 지났으니 소를 각하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런데 재판장님은 역시 한 수 위였다. “30일 되는 날이 선거로 공휴일 아니었나요?” 그러니 제소기간을 어긴 것이 아니다. 사단법인 새조위가 수행하고 있는 북한이탈여성 가정폭력상담원 양성교육 과정은 총 120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법률과목은 범죄학개론, 성폭력 관련법의 이해 등이 있는데, 지난 달 어느 일요일 오전, <성폭력 관련법의 이해>를 두 시간에 걸쳐 강의하게 되었다. 개업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그 동안 그런 유형의 사건을 변론할 기회가 없어 성폭력 관련법의 동향은 무슨 특별법·특례법이 많아졌다는 것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강의안을 만들면서 마치 미로를 찾아가는 듯했다. 형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등 여러 법률을 읽다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는지 원망스럽다. 아니면 명색이 법률가인 나의 법률에 대한 무지를 탓해야 할까? 피해자 나이 13세와 19세를 기준으로 갈리던 적용 법률을 더 복잡하게 한다고 최근에는 15세 기준을 또 신설하겠다고 나선 분이 있다. 있는 법률이라도 하나로 통합·정리하여 이해하기 좋게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법률에 대한 무지’는 나 하나로 끝냈으면 한다. ‘법률에 대한 무지’는 법조경력 28년차를 바라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법조인생을 마칠 때까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법률신문 2013. 11. 2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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