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변호사로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언제일까.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고 하는 분도 있다. 어느 선배 변호사는 두둑한 보수를 받은 사건의 수사기록을 읽을 때면 그 글자가 그렇게도 크게 보일 수 없다고 능청을 떤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1심과 2심에서 내리 졌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판결을 받았을 때를 들고 싶다. 사실심을 거치며 도합 여섯 분의 법관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척했던 주장을 대법원이 결국 알아주었다는 데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 때문이다.
파기판결을 받고 기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작년 11월 변호인인 내가 받은 대법원판결의 이유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가 아니라, ‘취지의’라는 세 글자가 중간에 들어 있는 것이다. 파기는 하지만 변호인 당신의 상고이유 주장은 적확하게 맥을 못 짚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아프다. 허리 총으로 대충 쏘았는데 과녁을 맞혔다는 말이다. 대법원이 알아서 직권으로 파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피고인을 지지하는 학교 동창이나 지인들이 국회의원 선거 전부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활동하는 한편, 가끔 오프라인에서도 모였다. 그것이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위한 사조직 설립의 죄에 해당한다고 기소되었다. 피고인은 그 사조직 설립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 설립 당시에는 아직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가 아니었다고 부인하였으나,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고 항소도 기각되었다. 마지막 상고심 단계의 변호인인 나의 상고이유는 항소심까지의 주장과 이에 대한 원심의 판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법원은 달랐다. 역시 한 수 위였다. 피고인이 공모했는지, 입후보예정자였는지 하는 주장에 앞서서 인터넷 카페를 통한 선거활동 자체를 허용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접근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였다. 손 따라 둔 바둑이 아니다. 대법원은 변호인이 제대로 펴지도 못했던 전향적인 법리를 선언하였다. ‘인터넷 공간에서 카페를 개설하고 회원을 모집하여 선거활동을 하더라도 이러한 인터넷상 활동은 허용되어야 하고 이를 사조직 설립 죄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2013도2190). 그동안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자우편을 통한 선거운동은 널리 허용되었는데, 선거운동의 자유를 종전보다 확대하였다. 인터넷상 일반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적극 장려하자는 취지다. 후배들에게 사건을 처리할 때 헌법적 시야를 가지라고 늘 강조해왔던 나로서는 부끄러웠지만 대법원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지향하는 정책법원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사건을 처리하다보면 세세한 쟁점에 매몰되기 쉽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리더십의 핵심은 상상력인데 법조인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법원이 앞장서서 보여주어야 한다. 판결이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움 힘이 되려면, 법조인에게도 이제 창의력과 ‘틀 밖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법률신문 2014. 6. 23.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