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법연수원 동기생들이 법원장을 나가는 순서를 보니 가족관계등록부상 나이 순이라고 한다. 1984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때 학번도 나이 순이었다. 같은 반 내 뒷자리에 동향 출신이 앉아 있었다. 당연히 후배로 생각하고 바로 말을 놓았는데, 아뿔사 알고 보니 나보다 선배였다. 이장이 동네 아이들 출생신고를 함께 모아서 하는 바람에 출생신고가 2년이나 늦게 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친구는 태어날 무렵 형이 죽었는데, 부친이 머리를 써서 형의 사망신고와 그 친구의 출생신고를 동시에 생략하는 방법으로 호적 유용(流用)을 하여 그 친구는 그냥 형으로 살아왔다. 그는 정년이 실제 나이보다 빨리 다가오자 몇 년 치 연봉이 아까워 법원에 가서 출생연월일 정정 허가를 받았다.
요즘 우리나라 영아사망률 통계를 보면 의료수준의 발달로 1000명당 3명밖에 되지 않아 OECD 평균 4.1명보다 낮다. 필자가 태어난 1961년의 경우 1000명당 무려 88.8명이었다. 영아사망률도 높고 출생신고 기간도 몰라서 그 당시 시골에서는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않았다. 게다가 법이 정한 기간을 지나 출생신고를 하러 가면 과태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생일과 다른 날짜로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도 생년월일을 물으면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르다. 생년월일이 세 가지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탈 때나 공식적인 문서에 생년월일을 적으라고 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나오는 대로 1961년 3월 15일생이라고 기재한다. 그러나 실제 생일은 음력으로 1960년 12월 18일, 양력으로는 1961년 2월 3일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양력 생일을 몰라 음력 생일만 알고 있었다가 인터넷의 도움으로 양력생일도 알게 되었다.
한때 호적 담당인 법원장들이 개명을 잘 안 해주었다. 이름을 함부로 바꾸면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해서다. 그러니 성난 민원인이 법원 마당에서 법원장을 향해 “호적 담당 김 판사 나와!”라고 고래고래 소리친 적도 있지만, 대법원 2006. 4. 7.자 2005스87 결정(주심 이강국 대법관)을 분수령으로 요즘은 개명을 상당히 자유롭게 허가하고 있다. 계란 세우기 비슷하여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족관계등록부의 기록사항 중 잘못 기재된 출생연월일도 물론 개개인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정정할 수도 있겠지만, 직업변호사인 필자조차 그게 엄두가 안 난다. 이 자가 무슨 의도로 이런 정정허가신청을 할까 의심받기도 싫다. 지금 와서 출생증명서를 어디 가서 떼어올 수도 없는데, 법원이 바로 허가해줄지도 미지수다.
필자 같은 처지의 국민들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게다. 차제에 한시법으로 ‘특별법’을 제정하여 정말 간이한 방법으로 잘못된 생년월일을 일제히 정정해주는 사업을 시행해주었으면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바뀌겠지만 종전 주민번호와 전산으로 연동하면 불순한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법률신문 2015. 4. 9.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