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시행 5년을 지나면서 신청비율, 배제비율, 사건 처리기간, 무죄율, 항소심 파기율, 평결과 판결의 일치율, 배심원의 절차 만족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유·무죄 판단과 양형 판단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국민과 법원이 소통하는 통로가 마련되고 형사절차의 투명성이 제고되었다는 점에서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국민참여재판은 뿌리 깊은 전관예우 논란도 잠재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배심원의 평결과 법관의 판결 사이의 일치율이 무려 91%에 이른다는 점은 놀라운 성과이다. 형사재판에 건전한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국민들이 법관에 비해 온정적이지 않을까, 아니면 보다 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기우임이 드러났다.
참여재판은 집중심리 및 공판중심주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제1심에서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한 평결결과를 받아들여 무죄로 판단한 경우 항소심에서는 가급적 제1심의 무죄판단을 뒤집지 못하도록 한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도14065 판결도 참여재판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여재판은 형사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고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하는 키포인트(key point)이다. 정치학에서는 배심재판이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생활의 근간을 뿌리부터 변혁하는 일’이라고 한다. ‘형사재판의 근간을 뿌리부터 변혁’하는 국민참여재판을 더욱 활성화시켜 확고한 형사재판모델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의 참여재판 성과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의 역량과 양식이 이제 공동체의 문제를 형사재판의 마당에서 감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숙하였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2. 배심원 평결의 효력
최종형태안이 현행 권고적 효력에서 더 나아가 유무죄 판단에 ‘사실상 기속력’을 인정하는 점진적 방안을 택한 것은, 현행 헌법체계, 국민의 여론과 법 감정, 법원의 부담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사실상 기속력을 부여하고 가중다수결을 도입하는 등의 대체적인 개정 방향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이제 배심평결이 사실상 기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바뀜과 동시에 참여재판에 대한 국민의 책임도 아울러 증가된다는 점을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도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재판을 감당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고민을 하고 고도의 균형감각과 식견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모든 국민이 그러한 정도의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민주주의교육제도를 더욱 내실화하여야 향후 배심재판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법조계는 물론 교육계와 언론계가 이 부분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몇 가지 보완사항을 말씀 드리겠다.
첫째, 사법의 민주화와 당사자주의의 관철이 옳은 방향이라면, 향후 장기적으로는 법적 기속력을 인정하는 완성된 형태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법목표를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최종형태안’이라기보다는 나는 ‘잠정형태안’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시 말하면 국민사법참여위원회는 계속 가동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국민사법참여위원회의 참여법률 개정초안 제46조 제5항의 규율방식은 재고를 요한다. 개정초안 제46조 제5항은, ‘판사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함에 있어서 제2항 및 제3항의 평결을 존중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 평결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유·무죄 판단의 경우 본문과 단서에서 평결존중원칙과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데, 평결 존중의 원칙을 법문에서 선언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배심원 평결 존중의 원칙’을 규정하고, 다시 존중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를 규정하는 것은 입법형식상 어색하다. 기실 ‘존중’이라는 법률용어 속에는 이미 평결결과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초안 제46조 제5항의 단서규정은 삭제하자는 의견이다. 법관이 어떠한 경우에 평결결과와 다른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지는 참으로 다양하여 그 기준을 획일적으로 굳이 두지 않아도 좋다. 예컨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9조(심의위원회의 심의결과 존중)는, “법무부장관은 시정명령 여부 결정 시 심의위원회의 심의결과를 존중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다만, 참여법률 제49조 제3항에서 “배심원의 평결결과와 다른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판결서에 그 이유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존중예외’는 이 경우에만 실무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므로, 제49조 제3항의 규정에서 개정안의 단서부분을 이동하여 구체화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참여법률 제49조 제3항을 다음과 같이 개정하였으면 한다.
〇 참여법률 제49조 제3항 개정안(수정안) :
“③ 평의·평결의 절차 또는 내용이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어 배심원의 평결결과와 다른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판결서에 그 이유를 기재하여야 한다.”
개정안 제46조 제5항 각 호는, “평의·평결의 절차 또는 내용이 헌법·법률·명령·규칙 또는 대법원 판례에 위반되는 경우(제1호), 평결의 내용이 논리법칙과 경험법칙에 위반되는 경우(제2호), 그 밖에 평의·평결의 절차 내용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제3호)를 열거하고 있는데, ”제2호는 채증법칙 위반으로서 결국 법률위반의 범주에 속하므로 따로 둘 필요가 없는 규정이다. 결국 “평의·평결의 절차 또는 내용이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로 요약 정리할 수 있다. ‘부당’은 ‘현저히 부당’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3. 실시요건 – 직권 회부를 허용할 것인가
최종형태안은 법원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직권 또는 검사의 신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이 극력 원하지 않는 참여재판을 법원이 직권으로 강행하는 것이 헌법상 재판청구권과 배치되지 않는지 심중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반대함(배심재판을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직권으로 또는 검사의 신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는 최종형태안에는 반대한다. 현행 신청주의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은 좋지만,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라면 피고인은 배심재판이야말로 오히려 여론재판으로 흘러 불이익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은데, 배심재판을 직권으로 한다는 것은 위헌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사법참여위원회 개정안 제5조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법원이 직권회부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러한 결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불복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개정안 제5조 제4항), 더욱 문제이다. 그 해석기준 내지 운용기준이 재판부별, 법원별, 법관별로 달라 실무상 자의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과 같은 추상적인 일반규정은 두나마나 한 것이어서 법률조문으로서는 부적절하다. 직권회부결정에 대해 불복이 허용되지 않아서 대법원판결이 생성될 수 없는 기준을 법률에 추상적으로 설정하여 두면 결국 재판부의 재량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문구는 직권회부 기준으로서는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규정이어서 어떻게 실무운영이 될지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언뜻 생각나는 것으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상 심리속행사유에 ‘중대한 법령위반’이라는 기준이 있는데, 그것이 기준으로서 일률성을 가지는지 의문이듯이 말이다. 설령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기준은 둔다면, 이를 보다 구체화하거나 대법원규칙에 위임하거나 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설령 직권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더라도, 사견으로는, 적어도 직권발동에 있어서 ‘피고인의 의견’을 듣는 절차 및 피고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규정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피고인이 극구 원하지 않는 참여재판을 법원이 직권으로 강행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판부기피사유가 될 수도 있다. 피고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직권회부결정을 한 사건에서 배심원의 무죄평결과 다른 유죄판결이 선고된 경우를 상정해 보면, 강제주의가 피고인에게 지극히 불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〇 참여법률 제5조 제3항 개정안(수정안) :
“③ 법원은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제1회 공판기일 전까지 피고인과 검사의 의견을 듣고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피고인의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
4. 기타
(1) 최종형태안이 공판정 좌석 배치를 민사법정 방식으로 변경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오히려 일반 형사재판에서도 최종형태안처럼 변경되어야 한다. 법정형태를 변경하는 김에 프롬프터와 같은 ‘발언대’를 설치해 주었으면 한다.
(2)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법관만을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참여법률에 배심원에 대해서도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규정을 두어야 한다.
(3) 참여재판의 경우 변론에 드는 노력에 비해 국선변호인의 보수가 열악한 형편인데 실질화해야 한다. 참여재판의 경우 구두변론이 핵심이므로 국선변호인에게 법정변론에 따른 시간당 보수 방식(time charge)의 도입을 검토해 볼 만하다.
(2013. 2. 18. 대법원 국민사법참여위원회 주최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최종형태 결정을 위한 공청회’ 지정토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