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추천·제청 절차의 제도화

●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추천·제청 절차의 제도화

2021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신설된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대법원장의 제청 및 국회의 동의, 검찰총장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법무부 장관의 제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 감사위원은 감사원장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렇게 헌법과 법률이 임명권과 추천·제청권을 나누어둔 것은 바로 ‘상호 견제와 균형’ 속에서 독단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를 통해 공화(共和)의 가치를 구현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말하는 공화주의의 핵심은 바로 ‘견제와 균형’이고 ‘함께 일하기’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으로 임명했다. 이회창 감사원장은 대쪽 판사 출신답게 공석인 감사위원 2명을 청와대와 사전 조율도 없이 제청했다. 인사제청권은 고유권한이니 임명권에 함부로 휘둘려서는 안 되고, 대통령의 위세에 눌려 감사원장의 감사위원 제청권이 형해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이 있었다. 노발대발했을 법한데, 김영삼 대통령 역시 통이 큰 정치인이었다. “그건 감사원장이 알아서 하세요.”
헌정사에는 제청권과 임명권이 정면충돌한 경우도 몇 번 있다. 사전 조율 없이 법률에 정해진 대로 제청권을 행사했다가 대법원장이 무려 6개월간 공석이었던 적도 있다. 1957년 당시 제헌 헌법은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법원조직법에서 ‘대법원장·대법관·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의 제청’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물론 헌법에도 없는 대법원장 제청 제도에 대해 행정부의 위헌 주장이 있었지만 김병로 대법원장이 국회 본회의에 직접 출석하여 반박하면서 위헌론을 잠재웠다. 그런 권위를 가진 김병로 대법원장이 정년퇴임하기 전에 대법원장 제청권자인 법관회의는 표결 끝에 김동현 대법관을 선출하고 법원조직법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청하였으나 대통령이 그를 임명하지 않고 사실상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은 법관회의에 친서를 보내 ‘자유당 경북도당 위원장 이우익을 제청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번에는 법관회의가 거부하였다. 김두일 대법원장 직무대행과 배정현 대법관이 경무대를 방문하고 온 후에 법관회의는 조용순 전 법무부 장관을 제청하여 그가 공석 6개월 만에 제2대 대법원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이 사례를 보면 제청권자와 임명권자 사이의 사전 조율이 현실적으로는 원만한 인사권 행사에서 불가피하기는 하다.
현행법상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회의 동의권만 있고, 대법관과 검찰총장에게도 있는 추천·제청 제도가 없다. 대법관은 헌법에도 없는 후보추천위원회 제도가 이미 법원조직법에 규정되어 있고, 대법원장은 제1공화국 때 법원조직법에서 제청제도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에 대해서도 ‘후보추천’이나 ‘제청’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법률에 규정되기 전에는 대법원규칙으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시작했던 것처럼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추천위원회 내지 제청위원회도 법률에 규정하기 전에 대통령령으로 우선 시행하면 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야당에서 ‘시행령 꼼수’라고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회 외에도 여럿이 함께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상 공화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대통령으로서는 추천·제청 과정을 거치면 보다 좋은 인사를 물색할 수 있다. 이번 가을에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새로 임명하는 기회에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추천·제청 제도를 도입해보자. 이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것이고 국가역량을 높이는 길이다. 분점정부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 동의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정면충돌하여 사법부 수장의 공백이 생기는 사태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법률신문 2023년 3월 23일자 법신논단)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23-03-23

조회수7,550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

연말정산 때 이자도 가산해서 환급해야 하지 않을까?

●연말정산 때 이자도 가산해서 환급해야-소득세법을 개정해야    오늘 급여를 지급하면서 드는 생각 하나.   우리 법무법인도 연말정산을 해보면 국고(國庫)에서 되돌려주는 금액이 상당하다. 근로소득자들은 매월 급여 때 일단 간이세액표에 따라 근로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미리 납부하였다가 다음 해 1월에 연말정산을 하고 2월 급여 때 그 정산금을 돌..

Date 2022.02.26  by 황정근

전직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성 형사처벌, 그 고리를 끊을 방..

●전직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성 형사처벌-그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는가 미국 역사에서는 전직대통령을 형사처벌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문제가 많은 대통령도 가급적 그 장점을 부각하여 위인으로 만들어 후세를 가르쳤다. 중국에서도 정적을 형사처벌한 사례가 몇몇 있지만 원칙적으로 중공최고지도부 상무위원급 이상은 처벌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국격의 문제이..

Date 2022.02.22  by 황정근

미성년자 국회의원?-18세 vs 19세

●미성년자 국회의원?-18세 vs 19세  최근 국회 정개특위는 현행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 25세(공직선거법 제16조 제2항)를 18세로 개정한다고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5조의 선거권 연령 18세와 일치시킨다고 한다. 올해 안에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2022년 3·9 재보선 때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민법의 19세 성년 제도와의 체계 정합성을 검토했는가? 18세 선거권은 1..

Date 2021.12.29  by 황정근

대통령소속 역사자문위원회

●대통령소속 <역사자문위원회>    최근에 나온 김영삼평전 <김영삼 재평가>(오인환 저)는 김영삼 전 대통령 (1928-2015)이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1954년부터 대통령에서 물러난 1998년까지, 그를 중심으로 두기는 했지만, 파란만장한 한국현대정치사를 거의 객관적으로 잘 정리했다. 그당시 다른 주인공 관련 회고록이나 평전도 거의 다 비교 분석했고, 아직 공간되지..

Date 2021.12.06  by 황정근

소투 (SOTU)

● 소투 (SOTU)미국 국빈 방문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을 미국에서는 ‘소투’(SOTU, State of the Union)라고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9년 11월 3일 독일총리로서는 최초로 SOTU의 기회를 얻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수십 년 간 독일에 주둔했던 미국인 1,600만명’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부터 했다. 대단한 디테일이다. 나는 이게 궁금하다. 지난 수십..

Date 2021.11.30  by 황정근

새로운 물결

●새로운 물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발기한 신당 이름이 <새로운 물결>인데 참신하기는 하다. 내가 전에 정당의 정치구호로 <민생 큰 물결>을 주장한 바 있는데, 거기서 따왔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당법을 개정하여 정당 이름에는 <당> <정당>이라는 말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정당 새로운물결>(약칭 새로운 물결) <..

Date 2021.10.26  by 황정근

분수령이 되는 선거

●분수령이 되는 선거  역사에서는 일종의 <분수령이 되는 선거>가 있었다. 미국 선거로는 1860년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 스티븐 더글러스, 1932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 허버트 후버, 1980년의 로널드 레이건 대 지미 카터, 영국 선거로는 1979년의 마거릿 대처 대 제임스 갤러핸.   자,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그야말로 분수령이 될 선거가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

Date 2021.10.25  by 황정근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ㅡ<교육받지 않은 마음>(The Unschooled Minds)을 이겨내는 것`교육받지 않은 마음`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사용한 말이다. 번역이 좀 어색한데, 요약하면 이렇다.사람은 누구든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관점과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교육이 없더라도 세상의 중요한 일에 대해 나름의 의견 즉..

Date 2021.10.20  by 황정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소재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소재지   최근 헌법재판소를 <광주광역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에는 헌법재판소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다. 헌법재판소법의 개정 없이도 그냥 어디로든 이전하면 된다. 따라서 개정안 제11조의2(소재지) ‘헌법재판소는 광주광역시에 둔다’는 규정을 굳이 ..

Date 2021.08.31  by 황정근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의견은 무엇인가? - 언론중재법의 ..

●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의견은 무엇인가? - 언론중재법의 손해배상 조항현재 국회에서 쟁점화 되어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는, 법원이 제30조 제1항에 따른 손해액의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 등을 적극 고려하여 인정되는 정당한 손해액을 산정하도록 하는 개..

Date 2021.08.24  by 황정근

● ‘개프(gaffe) 지수’를 낮추는 방법

● ‘개프(gaffe) 지수’를 낮추는 방법- <나의 입장, 나의 가치, 나의 우선순위>- <내가 하고 싶은 얘기>공직선거 후보의 무지(無知), 부주의, 모호성, 둔함(=감수성 부족), 악의, 천박함, 거짓, 위선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그저 통념과 동떨어진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어 공격의 빌미를 주는 서툰 표현을 언론에서 일컫는 말이 ‘개프’다. 정치 초보 대선후보의 답..

Date 2021.08.12  by 황정근

주 52시간제의 해법

● 주 52시간제의 해법 - 캘리포니아주의 <면제 근로자>(exempt employee)’ 제도    주 52시간제는 근로자 5~49인 기업체에도 2021년 7월부터 일률적으로 시행되었다.   인간만사에 예외 없는 원칙은 없는 법인데,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윤석열 예비후보자가 주 102시간을 언급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최근 홍준표 의..

Date 2021.08.07  by 황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