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의 방향
기념관기본법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선생은 을사늑약 후 의병을 일으켰고, 1915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형사변호공동연구회를 창설하고 광주학생운동과 6․10만세운동 등에 대해 무료변론을 하였으며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유명한 독립운동가 출신의 법조인이다.
해방 후 1946년에는 군정청 사법부장이 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대법원장이자 법전편찬위원장이 되어 형법을 기초하는 등 건국 초기의 사법발전에 기여하였으며, 1957년 퇴임시까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권 독립의 기틀을 세웠다. 법관의 덕목인 청렴․강직․소신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가인을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 중 한 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은 가인의 생가가 있는 전북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 300평 규모의 기념관을 건립하고, 인근에는 연건평 1,300평 규모의 법관연수시설을 건립하였다.
대법원 로비에는 가인의 흉상이 서 있고, 전주시 덕진공원에는 전북 지역 출신의 출중한 법조인인 최대교 전 검사장 및 김홍섭 전 법원장과 함께 ‘법조 3성(聖)’ 상이 세워져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졌는데, 생가 부근에 가인기념관을 세운 것은 너무나 잘한 일이다.
연수시설에서 법관들은 가인을 기리면서 참다운 법관의 길에 대하여 경건하게 생각해보고 초심을 더욱 견고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가인의 훈시 중에 요즘의 법관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자.
가인은 1952년 사법감독관회의(오늘날의 법원장회의) 석상에서 ‘영장 범죄사실이 범죄로 인정할 수 없거나 경미한 범죄로서 도망 염려가 없음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식심사에 그치고 영장을 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훈시하였다.
천하의 가인도 일제 치하에서 일제의 형사사법 시스템 하에서 살아온 분인지라, 오늘날의 구속영장실질심사제의 수준까지는 내다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가인을 배출한 순창군에서는 가인연수관 사업을 위해 진입로와 인근 등산로를 정비하는 등으로 잘 협조하였고, 이제 가인연수관은 법원구성원들의 좋은 연수시설로 자리 잡았다. 그 당시 강인형 순창군수는 대법원장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 순창군에서는 대법원과 함께 대대적인 가인 생가 복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도중에 강인형 순창군수는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기소되어 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군수직을 상실하고 말았다. 제1심인 순창군 관할 남원지원에서는 대법원장 감사장이 효험이 있었는지 당선유효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강 군수가 사법부에 이바지한 바 있다는 것과 형사재판의 양형은 별개인 모양이다. 가인연수관에 대해 강 군수가 크게 기여한 것을 아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건국 이후 우리 법조계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나 지도자가 많이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애써 폄하하거나 홀대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어린 학생은 물론이고 법학도나 로스쿨생, 사법연수생 내지 새내기 법조인들에게 법조인으로서 사표로 삼을 만한 분들을 많이 찾아서 보여주는 작업은 결코 소홀히 할 일이 아니다.
존경받는 법조인의 삶과 정신을 새롭게 계승하도록 하는 것은 오늘 우리 세대의 몫으로서 후세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법조인의 기념관을 세우고 그 정신을 기리고 받드는 것은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제2, 제3의 기념관을 세우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대법원에 있는 법원사자료실을 더욱 확대 개편하여, 많은 법조인들의 발자취와 흔적을 전시하는 기념관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법조인만이 아니라 국가에 공헌한 전직 대통령 등 지도자에 대한 기념관 건립도 논란은 있지만 적극적인 자세로 잘 마무리 지워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은 우여곡절 끝에 2012년에야 개관하였으나, 아직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말도 있듯이 역사 속의 인물의 공과를 함께 보여주는 기념관은 누가 뭐라 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정인에 대한 기념관을 세울 때마다 예산지원을 놓고 논란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기념관의 설립과 등록·관리 및 예산 지원 등에 대해 통일적으로 규율하는 가칭 ‘기념관법’ 내지 ‘기념관기본법’을 제정하여, 앞으로 각종 기념관을 더욱 많이 지었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국립순직소방관기념관(National Fallen Firefighters Memorial)과 같이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순직한 경찰·소방공무원들을 기념하는 기념관 하나 정도는 크게 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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