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는 사실인정과 법리적용도 물론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적정한 양형을 도출하는 작업은 정말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형사재판에서 유․무죄 판단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소송당사자의 관심은 양형이다. 형법 제51조에 양형의 조건이 규정되어 있지만, 법관의 고민도 대개 양형에 집중되어 왔다.
그럼에도 양형심리는 기록에 나타난 매우 제한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법관 개개인의 경험과 직업적 감에 의존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운영에서 하나의 축을 이루는 형사사법권도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에서 나온 것이므로 형사사법의 영역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이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양형이야말로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직결되므로, ‘형을 정함에 있어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하여’(법원조직법 제81조의2 제1항) 법관은 물론이요 검사 및 변호인도 가일층 노력하여야 한다.
사실 양형의 문제는 이제 법관 개개인의 경험과 개인적인 양심이나 세계관에만 일임할 것이 아니라 형평성과 객관성 내지 적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보다 과학적인 심리기법을 도입하여야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2009년 7월부터 기소된 살인죄 등 주요 범죄에 대하여부터 시행되었다.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내용이 방대하고 비교적 세밀하여 공판과정에서는 양형기준을 어떻게 적용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공방이 벌어지기도 하고,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에는 판결서에 양형이유를 기재하여야 하므로, 형사재판에서 법관의 양형심리는 양형기준제 시행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양형이 일시적인 여론에 휘둘려서도 안 되지만, 사회적 현실이나 국민들의 요구 및 일반적인 법감정 내지 법의식을 끊임없이 파악하고 분석하여 양형기준을 재조정하는 것 역시 법조인들이 할 일이다.
우리 법조인들의 양형 감각이 혹여 일반국민들의 법 감정과 괴리되어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겸허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거 특정 아동성폭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양형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은 물론 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정치권과 관련 당국에서는 유기징역형의 상한 인상, 공소시효 연장 및 전자 팔찌 부착기간의 연장 등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물론 특정 재판의 양형에 불만이 있다고 하여 그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나 검사 등을 매도하는 것은 사법에 대한 불신만 더 깊게 하는 것이므로 자제되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나 정치권에서 입법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에 속하지만, 특정 확정재판에 대하여 당해 법관이나 피고인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제도 개선은 외국의 입법례와 헌법 정합성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신중히 처리하여야 할 것이지, 여론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나머지 이성을 잃고 중구난방으로 각종 제도를 졸속 도입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양형의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양형심리를 보다 심층적․객관적․과학적․다각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형조사관제의 도입을 규정한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양형조사관을 법원과 법무부 중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논란 때문에 개정안 통과가 지연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사법제도개혁 추진과정에서 양형기준제를 도입할 당시의 정신, 법무부 소속인 보호관찰소에 양형조사관을 두는 경우의 공정성 시비 우려, 보호관찰관의 제도적 취지 및 외국의 입법례 등을 고려하면, 법관의 양형심리를 도와주는 양형조사관은 법원에 두는 것이 양형조사관제도의 취지에 맞다.
그리고, 검사도 양형에 대한 의견진술권이 있으므로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검사에게 보호관찰관에 대한 양형자료 조사 요구권을 부여함으로써 검사가 필요한 경우 보호관찰관으로부터 양형자료를 보고받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한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양형기준제가 먼저 시행되고 양형조사가 이전보다 중요해진 이상, 법 개정 전에는 법관의 명을 받은 조사관(법원조직법 제54조의3)으로 하여금 잠정적으로 양형자료조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통하여 양형자료조사의 전문성을 축적하도록 함으로써 양형조사관 제도 시행에 만전의 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그 동안 살인,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 약취·유인, 사기, 절도, 공문서범죄, 사문서범죄, 공무집행방해, 식품·보건범죄, 마약범죄, 증권·금융범죄, 지적제산권범죄, 교통범죄 등에 대한 양형기준을 제정하였는데, 양형기준이 권고적 효력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재판실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양형에 대한 심리와 판단은 양형기준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한편 법관의 양형기준으로의 도피 현상과 양형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결여, 엄벌주의적 경향 강화에 기인한 피고인과 변호인 측의 불만의 고조 등의 부정적 현상도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