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하고 법률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남상고 여과장치로 도입된 심리불속행제도가 1994년 9월 1일 시행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어떤 제도든지 그 시행에 따른 빛과 그림자가 있겠지만, 총론적으로만 보면 그 동안 심리불속행제도가 남상고나 무익한 상고를 적절히 여과하여 대법원이 법률심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대법관 1인당 사건수가 1995년의 922건에서 2007년에는 2,115건으로 급증하자, 2011년 말까지만 해도 대법원은 상고사건 적체를 해소하기 위하여 심리불속행 처리 비율을 매년 높여가며 운용하였다.
그래서 실질적인 상고심 재판청구권 보장 면에서 미흡한 것이 아니냐 하는 소송관계자들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었다.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은 실질적인 이유 기재도 없으려니와 선고기일도 따로 없으니, 언제 심리불속행 기각을 당할지 알 수 없어, 상고기록 접수 후 4개월이 도과되기까지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몇 가지 제도적․실무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제3조 제1항 각 호의 심리불속행 사유, 특히 ‘중대한 법령위반’(제5호)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대법원에서도 판결로 이에 관한 일관된 기준을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심리불속행 여부가 주심대법관 개개인의 재량에 너무 의존하여 편차가 심하다. 과연 ‘중대한 법령위반’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대법원규칙으로라도 정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접수 후 4개월을 경과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결이유를 기재하느냐가 좌우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둘째, 위 특례법을 개정하여 ‘소송목적의 값이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금액(예컨대, 5억원 또는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로서 제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상반된 때’를 심리속행사유로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법원이 법률심이기는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사건으로서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1, 2심 합의부에서조차 결론이 상이한 경우에 대법원이 상세한 이유를 기재하여 최종 판단을 내려주지 않으면, 3심제 하에서 헌법상 재판청구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81년에 도입된 상고허가제도가 10년을 못 채우고 1990년에 폐지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심리불속행에 대한 일관된 운용기준을 정립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조속히 해결함으로써 심리불속행제가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심리불속행으로 상고기각되는 사건비율은 2005년에는 56% 정도였으나 2008년에는 65%에 달하였고, 2009년의 경우 무려 70%에 육박하였다.
대법원은 상고사건 적체 때문에 그런 식으로 운영하였지만, 심리불속행사유가 법률상 바뀐 것으로 아닌데 매년 비율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상고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심 특히 항소심 재판의 질적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구체적인 권리구제에 중대한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도 2009년 6월 9일 현행 심리불속행 제도의 불합리한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회원들의 사례 및 건의사항을 접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등 자구책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법률상 심리불속행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심리불속행 판결을 한 경우에 대한 구제수단이 없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과연 판단누락(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9호)으로서 재심사유가 되는지, 예외적으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심리불속행 기각판결을 한 경우에는 국가가 제공한 역무와의 균형을 고려하여 소취하나 조정․화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지액의 1/2 환급청구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자, 「민사소송등인지법」 제14조이 개정되어 심리불속행 기각 시 인지 절반을 환급해 주고 있다. 즉 2012년 1월 17일 법률 제11156호로 「민사소송 등 인지법」제14조 제1항 제6호(「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기각된 경우)가 신설되어 심리불속행 상고기각의 경우에는 첩부한 인지액의 1/2을 환급하도록 개선되었다.
대법원은 2011년 말경 ‘심리불속행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제1심과 제2심의 결론이 상이한 사건, 상고심 소송목적의 값(소가)이 3억원 이상인 사건, 사회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은 원칙적으로 심불제외사건으로 분류하여 판결이유를 기재한 판결로 상고기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심리불속행사유가 법률상 바뀐 것도 아닌데 대법원의 필요에 따라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비율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상고사건을 처리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심리불속행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점에서 이번 개선방안에서 어느 정도 심불배제사유를 구체화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개선방안과 심불기준이 대법원판례로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기준이 외부에는 전혀 공표된 바 없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제3조 제1항 각 호의 심리불속행 사유 중 ‘중대한 법령위반’(제5호)의 해석에 관한 일관된 기준을 대법원규칙화하여 외부에 공표할 필요가 있다.
인지 일부를 환급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소송당사자의 권리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령에서 정하여야 한다. 그 환급 여부는 소송당사자가 결정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오로지 대법원의 일방적인 판단에 좌우된다.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는 법령으로 정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원칙에 반한다.
심리불속행 비율을 낮추기 위해, 종래 심리불속행 기각을 했던 사건들에 대해, 한 두 줄짜리의 아주 간단한 형식적인 판결이유만 기재하여 상고기각을 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단순히 사실인정을 다투는 상고이유에 대해 판결이유에서 ‘원심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인정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만 기재를 하고 상고를 기각한다면, 그런 정도의 상고기각판결이라면 국가가 제공한 역무와의 균형을 고려하거나 소송당사자의 의사에 비추어 볼 때 인지 일부를 환급을 받은 심불기각 판결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