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55조는, ‘제54조의 규정에 의한 불복의 소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서울고등법원을 전속관할로 한다.’고 규정하여, 공정위의 시정조치, 과징금부과 등에 대한 행정소송은 1심을 생략한 2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1998년 3월 전문법원인 행정법원이 최초 개원되면서 행정소송은 과거의 2심제에서 3심제로 전환되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공정위는 그 때에도 예외로 인정받아 그 동안 2심제로 운영되어 왔다.
당시 행정소송제도 개혁을 추진하던 사법부가 ‘일본에서도 동경고등재판소 전속관할로 되어 있다’는 공정위의 반대논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세소송 등 각종 행정소송의 관할을 1심 행정법원의 내리면서 전선을 가급적 축소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행정소송을 3심제로 전환한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현시점에서 행정법원의 3심화는 국민의 권리구제 및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1심인 행정법원의 충실한 사실심리에 근거한 항소심 및 상고심의 사후심적 운영이 사법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국민의 권리구제 및 법치행정의 확립에 보다 적합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행정법원 운영의 놀라운 성과를 바탕으로 공정거래소송의 관할 예외를 계속 존치할지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
공정위는 그 동안 기업에 대하여 이른바 경제검찰로 불리면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여 왔던 데 비하여, 그 처분에 대한 사법적 권리구제는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1심의 상세한 사실심리가 생략된 채, 1심의 사실인정과 법률판단을 전제로 하여 항소심을 다루는 서울고등법원 행정부에서 사실심리부터 해야 하므로, 고등법원의 심판 부담이 가중되어, 공정위의 주장이 그대로 사실관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사실심리의 불충분은 곧바로 대법원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공정위의 처분에 대한 사법통제장치가 엄정하게 작동되지 않으면 기업이나 국민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고, 이는 공정위가 ‘아니면 말고’ 식의 무리한 처분을 하게 되는 토양이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공정위에 대해 다른 행정기관과 달리 특례를 둘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공정위 애의 이의신청(행정심판)절차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고 공정위 위원 분포나 위원장의 지위에 비추어볼 때 공정위는 어디까지나 행정기관일지언정 사법부의 1심 기능을 대체할 만한 사법기관의 요소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정거래 재판의 전문화 차원에서도 전문법원인 행정법원에 의한 재판이 필요하다.
서울고등법원 행정부는 대개 1년 단위로 담당법관이 바뀌지만, 행정법원은 2-3년 동안 인사이동이 없어 전문성 면에서 행정법원에서 공정거래소송을 다루는 것이 전문법관 양성 내지 사법전문화에도 득책이 될 것이다.
공정거래소송을 3심제로 전환할 경우, 현행법 제55조를 폐지하여 수원지법이나 서울행정법원의 관할로 하는 방안도 가능하나, 재판전문화 차원에서 전문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의 전속관할로 개정하는 방안이 옳다고 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논리는 공정거래사건의 전문성 내지 특수성 등을 이유로 서울고등법원 전속관할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공정거래사건이라고 해서 조세 등 기타 행정사건보다 더 전문성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나아가 행정법원의 신설 자체가 재판의 전문화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전문분야일수록 전문법원인 행정법원으로 하여금 사법심사를 하게 해야 한다.
실제 행정소송의 3심화 이후 행정법원은 법리의 발전이나 국민의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여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전문성의 부족이 문제된 적은 없다.
불공정행위의 신속한 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1심이 면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잘못이다.
공정거래법이라고 해서 특별히 신속한 시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과징금의 경우는 신속성이 문제될 여지가 없고, 시정명령의 경우에도 현행법상 소제기에 따른 자동 효력정지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2심제든 3심제든 처분의 집행 면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1심부터 충분한 사실조사와 법리검토가 이루어진다면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심리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어서 신속한 판결 확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현행 2심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정위가 소추기관과 심판기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법원과 같은 정도로 대심적인 구조를 갖추고 피심인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그 속성상 언론과 국회 내지 이해관계인들에 대하여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위의 처분을 1심 법원의 판결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1심을 면제해주는 것은 헌법상 국민의 재판청구권에 대한 침해로 볼 여지도 있다.
최근 공정위는 과거와 달리 수백․수천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해당 사업자의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도록 하는 결정을 하는 등 개별 기업이나 소비자 및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처럼 공정위 결정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더더욱 1심부터 법원에 의한 사법심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법치국가 원칙에도 부합하고 법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현 시점에서 공정거래사건을 다른 행정사건과 달리 특별 취급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웃 일본에서도 3심제를 골자로 한 법개정안이 2011년 1월 24일 중의원 경제산업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의 중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공정거래사건을 3심제로 전환하고, 사건의 전문성을 감안하여 서울행정법원 전속관할로 개정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