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체제와 법치주의
국회질서유지법을 제정하자

국회가 거창한 국정과제를 국가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논의할 만한 민주적 의사진행의 역량과 정치적 타협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여·야의 극한 대립과 회의장 점거라는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지탄과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와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매년 말이면 국회에서는 폭력사태가 반복되었다. 쟁점 법률안의 당․부당을 떠나서, 그와 같은 입법기능의 마비와 비민주적 의사진행 자체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정치의 실종이자 반(反) 법치주의의 극치로서, 국내외적으로도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한때 국민들은 다수당의 독선과 횡포를 막기 위한 소수당의 정치투쟁을 민주화 투쟁의 일환으로 어느 정도 용납하고 지지하는 정서가 있었다. 이 때문에 국회의 의결과 입법을 폭력으로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것이 극한대립을 국회의 관행이 되다시피 유도하는 토양이 된 측면도 있다.
그렇게 방치하고 있는 사이에 지난 2008년 연말과 2009년 새해 국회에서는 해머와 전기톱까지 등장하였고, 몸싸움으로 수십 명이 다치는 등 심각한 국회폭력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보좌진들이 상대 정당의 국회의원에게 하극상의 폭력을 행사하고 몸싸움을 하는 패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심지어 2011년 11월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명색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최루탄을 터트리고 의장석에 최루가루를 뿌리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충격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이것을 무슨 의거(義擧)라고 부르는 분들의 정신상태를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직자들이나 보좌진들이 뒤엉켜 싸우며 울부짖고 폭력을 행사하는 생생한 장면을 보면서 한탄하고 비난만 하지 말고,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의회민주주의의의 발전과 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하여야 한다.
무슨 이유에서건 국회의 회의와 의결이 폭력에 의해 방해되고 입법권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상황은 이제는 종식되어야 한다.
비슷한 예로, 사법부에서 법정(法廷)의 질서가 그와 같은 식으로 침해된다면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늘 국정 각 분야에 걸친 근원적 처방이 논의되지만, 가까운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 최근 빈발하는 국회의 기능 마비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 먼저 실정법을 지키는 일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형법 제138조는 법정모욕죄와 국회회의장모욕죄를 함께 규정하고 있다.
즉 법원의 재판 또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법부의 재판기능과 입법부의 심의기능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수호의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특별히 둔 처벌규정이다. 국회의원일지라도 본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만약 법원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재판을 할 것이 예상된다고 하여 법정이나 그 부근에서 재판 진행을 방해할 정도로 평온을 교란하거나 질서를 파괴하는 소란 행동을 한다면, 법원은 사법기능 수호 차원에서 당장 법원조직법 제58조의 법정경찰권을 발동하거나 형법 제138조의 법정모욕죄로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국회의 입법기능이 훼손되고 있는데도, 국회가 정치논리나 힘 또는 국민정서에 휘둘려 스스로의 권위와 기능을 수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사법부가 그 기능 수호를 위하여 결국에는 법정경찰권과 법정모욕죄를 활용할 수밖에 없듯이 국회도 이제 국회회의장모욕죄를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물론 국회 내부에서의 심의방해나 소란행위가 때로는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점 및 국회의 자율권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 등에 비추어 다른 기관(행정부의 수사기관)의 개입이 가급적 자제되어야 할 것임은 당연하지만, 국회의 기능 마비 상황이 계속되면 국민의 여론이 이제는 형법상의 국회회의장모욕죄의 개입을 용인하거나 종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겸억주의(謙抑主義) 법철학에서 의하면 형법의 개입은 최소화하여야 하고 스스로 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퍼렇게 살아 있는 형법의 국회회의장모욕죄를 더 이상 사문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나 보좌진들이 국회회의장모욕죄의 현행범으로 체포 되거나 고발되어 처벌받는 사태는 제발 없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질서유지법도 정비하여야 한다.
국회가 자율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이상, 강제성 있는 국회질서유지법의 제정과 엄격한 시행을 통하여서라도 국회폭력과 단상점거로 인한 국가기능의 침해를 방지하여야 한다.
제18대 국회에서 「국회의 질서유지 등에 관한 법률안」과 「국회 회의 방해 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된 적이 있는데, 국회는 이와 같은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국회의 질서유지권과 경호권의 행사 절차 및 가중처벌, 피선거권 박탈 등에 대한 정교한 룰을 마련하여야 한다.
다수당과 소수당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지고 그런 법안 심사에 임한다면, 여․야를 떠나 위와 같은 법률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법률 시행 이후부터는 국회 회의장에서 다시는 폭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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