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인사청문회와 공직자의 자세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정책을 세우고 법률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일을 맡아 한다. 헌법과 법률의 최종 해석을 하기도 한다. 고위공직후보자에 대하여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하도록 하는 인사청문회법이 2000년 6월 23일 법률 제6271호로 제정된 이래 인사청문회는 이제 의미 있는 정치과정이 되었다. 인사청문회법 시행 후 최초로 국회 인사청문장에 선 공직후보자는 2000년 7월에 대법관에 임명된 이강국, 이규홍, 박재윤, 손지열 대법관후보자였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이규홍 대법관은 초임판사로서, 손지열 대법관은 부장재판연구관으로서 모신 인연이 있다. 인사청문회법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같이 국회법 제46조의3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임명을 위하여 동의요청된 자 또는 국회법 제65조의2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다른 법률에서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으로부터 국회의 인사청문이 요청된 자, 대통령당선인으로부터 국무총리후보자로 인사청문이 요청된 자에 대하여 인사청문을 하도록 하고 있다. 2006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위원(장관) 후보자 4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개최되어 공직적격성에 대해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몇 년 전에는 국무총리후보자 들이 부동산투기의혹 등으로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예도 있다. 이처럼 인사청문회를 전후하여 고위공직자의 인생역정이나 도덕성 문제가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서 검증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인사청문회를 통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행정부나 사법부를 견제한다는 고전적인 권력분립의 정신이 살아나게 되었으니, 이는 민주주의의 진전으로도 볼 수 있다.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은 인사청문회가 잘만 운영된다면 장차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인물들에게는 일종의 학습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은 “꿈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지려 한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 평생 살아온 족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실감한 고위공직후보자들은 스스로 평소에 처신과 행동을 조심하고 적어도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는 행위를 은연중에 자제하게 될 것이니, 이는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2000년 무렵부터는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공직자의 자세가 달라지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국민의 기본적 의무를 다했는지 등 아주 기본적인 사항에 관한 비리 폭로에 초점이 맞추어진 인사청문회는 입법취지상 문제가 있다. 그런 개인사에 대한 것은 비공개로 청문을 하였으면 한다. 물론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은 도덕성 시비나 국민의 기본의무 등 기본요건에 관한 시비가 인사청문회의 주를 이루게 될 것이지만, 언젠가 인사청문회를 의식한 공직후보자들의 수준이 상향조정된다면,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고위공직자로서의 자질과 인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시대의 변화는 빛의 속도를 능가한다. 시대변화를 따라잡고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선견지명과 먼 곳을 내다보고 살필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을 가졌는지,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소리를 지혜롭게 들을 줄 알고 그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공의(公義)를 실천하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있는지, 성실히 일하면서 미래를 창조하고 개척하는 깨끗한 손을 가졌는지, 명석하게 사고하는 머리에다 양심으로 가득 찬 가슴을 가졌는지 등등을 치밀하게 검증하는 수준 높은 인사청문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총리․장관․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낙마 사태 등 공직자가 국민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국민의 지탄을 받는 사례를 지켜보면,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위법행위에 대한 무감각과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의 마비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렇게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간다면, 이 나라는 선진일류국가․행복국가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2010년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외국 책이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국정의 화두로 제시하였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건전한 국민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고위공직자의 빗나간 행태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는 현재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근․현대사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비(非) 유럽 국가는 일본이 유일한데, 우리나라도 거의 유일하게 이제 선진국 문턱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지난 50여년의 경제발전을 통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를 토대로 선진국에 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국민소득이나 무역규모 등의 가시적인 지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더 나아가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격(國格)을 갖춘 문화국가(文化國家)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나 법치주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간접자본(社會的 間接資本)을 튼튼하게 갖추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간접자본의 확충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 선봉에 서 있는 공직자의 자세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는 양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영혼과 윤리도덕이 그에 걸맞은 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퇴화된 것은 아닌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선비의 기상과 정신적 유산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모든 사회 분야가 염치와 분수를 잊어버리고 혼란을 거듭하면 할수록 법조계가 원칙을 제시하고 중심을 잡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선 반듯한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법조계의 공직자들부터 더욱 분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공직자가 가진 막강한 권한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외경심(畏敬心)을 잊지 않아야 요즘처럼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공무집행이나 법해석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고위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후보자들의 범죄행위가 속속 밝혀지면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위장전입, 탈세, 직권남용, 명예훼손, 허위학력 등 백화점 식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고위공직후보자들의 법적․도덕적 흠을 바라보면서, 일국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이렇게도 인생을 안일하게 살았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요즘 세상은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가 넘쳐흐르고, 특히 법적․도덕적 흠결이 없는 고위공직자를 세우고 싶은 의식 있는 국민들의 제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통하여 평생 살아온 족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이제 시대의 대세이다. 물론 운 좋게 피해갈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거의 숨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고위공직을 맡으려면 후보자들은 스스로 평소에 행동과 처신을 조심하고 적어도 법적․도덕적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정도의 법적 흠은 사과나 유감 표시만으로 눈감아 주어야 하는지, 어느 선을 넘으면 부적격자로 보아야 하는지, 아직 기준이 모호하다. 그 기준이 애매하여 결국 청문회를 통과하여 고위공직에 임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진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절차는 별도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위장전입은 엄연히 주민등록법 제37조에 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범죄이다.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의 음주운전죄와 법정형이 같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경우에는 형사절차가 즉각 개시되어야 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이고, 공평한 사회에서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다. 검사는 범죄혐의가 있다고 사료되면 수사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195조). 국민의 고발이 있기 전에, 수사기관에서 인지수사(認知搜査)를 하여야 한다. 그 전이라도 공직자 스스로 진정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수하여 형을 감면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민들 사이에 위장전입이 만연하여 있고, 현행 주민등록법의 형사처벌이 과도한 것이라거나, 자녀진학이나 주택분양에 있어서 특수하고도 절실한 개인적 필요에 따라 부득이 위장전입을 하였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사정은 형사절차에서 정상참작하여 불기소(기소유예)하거나 약식기소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다만, 나는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까지 할 것이 아니라 과태료 정도로 제재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직자의 선거중립 훼손도 항상 문제가 된다. 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선거 때마다 문제된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차단함으로써 공명선거를 달성하고자 하는 데 입법취지가 있다. 따라서 정치활동이 허용되는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도 자신이 소속 정당의 구성원으로서 공직선거법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몰라도 그 직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2007년 6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6월 8일 원광대 강연과 6·10민주항쟁 기념사 및 6월 13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특정 정당 및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여권의 대선 전략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공무원의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를 위반하였다고 결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 21일 ‘정치인으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개인으로서 선거나 특정후보에 대하여 의견표명을 하는 것까지 금지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특정 후보자의 당선을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의식에 의한 행위라면 그것은 선거운동이 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 위반의 문제를 떠나 과연 자신의 언행이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도록 늘 유념할 필요가 있다.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