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새 세기 새 천년, 새 사법부

문명과 야만, 번영과 질곡이 함께 했던 20세기였다. 그 빛과 그림자, 영광과 좌절의 기록들, 싫든 좋든 무수한 기억들을 남긴 채 이제 20세기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석양을 받으며 강물처럼 흘러간다. 저 쓸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덮이면, 불확실하나마 희망과 비전으로 가득 찬 새 세기, 새로운 천년대(뉴 밀레니엄)가 눈앞에 전개된다. 세계는 지금 「뉴 밀레니엄」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바야흐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술혁신이 선도하고 국제경쟁이 격렬화해질 새 시대, 지식과 정보가 지배하는 뇌본(腦本)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고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이다. 「뉴 밀레니엄」을 맞아 미국은 ‘과거를 존중하며, 미래를 그리고’ 있다(Honor the Past - Imagine the Future). 일본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경제사회 구축' 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국은 ‘멋진 영국’(Cool Britannia)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프랑스는 '인류사회를 위한 새로운 길잡이 마련', 독일은 '미래지향의 21세기 건설', 말레이시아는 '비전 2020'을 모토로 새로운 세기에서의 일전(一戰)을 벼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가. 무언가 허전하게 「뉴 밀레니엄」을 맞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제2의 건국’을 가지고 응전(應戰)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전 국민적인 공감을 얻어내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제시되지는 못하였다. 문화관광부에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으나 주로 새해 첫날 맞이 문화 행사나 이벤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20세기 마지막 8․15 경축사도 사면권의 남용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가 당장의 집권당 선거공약처럼 여겨져 빛이 바랬다. 필자가 백일잔치를 할 무렵인 1961년 5월 16일, 그 때 이른바 혁명을 하거나 보궐선거에 당선되었던 분들이 선장을 맡은 채 우리 나라는 「뉴 밀레니엄」을 맞게 된다. 몇 푼 안 되는 공무원의 월급을 깎고 경조비를 금지하는 한편에서는 오리발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가 새 세기에도 이어질 것인가? IMF 체제의 고갯마루를 헉헉대며 오르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뉴 밀레니엄」의 첫날,2000년 1월 1일의 햇살은 얼마나 따스하게 떠오를 것인가? 우리 사법부에도 새 세기는 예외 없이 다가온다. 다른 게 있다면 사법부는 수장이 바뀜과 동시에 새 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송사건 백만 건이라는 사건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갈 지경인 우리들에게 새 세기는 과연 희망의 나날이 될 것인가? 배심제나 참심제, 양형기준제 등이 논의되는 외부의 도전에는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법정에서는 오로지 진실과 정의만이 살아 숨쉴 수 있을 것인가? 그 동안에도 무진 애를 썼듯이, 새 세기에도, 재판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 방안을 적극 발굴하고, 보다 질 높은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일류법원으로 도약하여, 국민이 거두어 간 신뢰를 되돌려 받는 데 가일층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노력과 더불어 새 세기 새 천년, 새 사법부를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한번 새롭게 해 보면 어떨까? 때로는 사실보다 태도가 중요하기도 하다. 먼저, 대법원에 법원조직법 25조에 규정된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발족시키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대법원에 7인으로 구성되는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두고 그 산하에 실무위원회를 설치하여 21세기 선진사법의 비전과 발전 전략을 적극 모색하면 어떨까 한다. 안 그래도 요즈음 온 나라가 무슨 무슨 위원회다 직속 위원회다 하여 위원회 투성이인데 사법부에도 또 위원회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만의 사법부가 아닌 국민들이 참여하는 새 사법부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정책에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의견 즉 여론을 적극 수렴하는 상설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이는 재판의 독립이나 사법권의 독립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적어도 재판제도에 관한 한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사개위’인지 ‘사추위’인지 같은 데서 함부로 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새 세기를 맞이하면서 또 하나 해야 할 일은 사법부의 생일 찾기다. 1895년 재판소구성법 제정 이후 20세기 100년 동안에는 사법부의 생일이 없었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구성된 대한민국 대법원이 개원한 날이 사법부의 생일일 터인데, 법원사(法院史)에는 그런 개원식을 했다는 흔적이 불확실하다. 일제시대와 똑같은 법을 가지고 재판을 쉬지 않고 계속하였을 터이니 그런 구분 관념도 희박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언제 정식으로 출범하였는지, 그것을 찾아 사법부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법원은 일제의 연장선에 서 있다는 노골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15일 저녁 TV 뉴스에서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예로 법원 판결문을 보도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우리의 생일을 찾아내서, 아무리 해도 찾지 못하면 그냥 만들어서라도 그 날을 ‘사법의 날’이든 ‘재판의 날’이든 뭔가 하나로 정해서 기념하면 어떨까? ‘법의 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메이데이」와 겹쳐 빛이 바랬을 뿐만 아니라 법무부와 변협의 날이었지 사법부의 날은 아니었다. 그 기념식은 언제나 우리에게는 어정쩡한 자리였다. 요즘은 불과 몇 년 근무하다가 로펌으로 전직하는 것이 유행인 듯하여 그것이 우려되지만, 정말 걱정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보수를 듬뿍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청춘을 바쳐 여러 성상(星霜)을 봉직한 분들에게 그 흔한 근정훈장 하나 제대로 못 챙겨줘서야 되겠는가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무슨 훈장을 바라고 나라에 봉사한 것은 아니지만 콩 하나에 섭섭한 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런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법의 날이 아닌 우리 사법부만의 기념일이 필요하다. 그 날을 전후해 전국의 법관들이 다 모여 전국법관대회라도 연다거나, 고등법원별로 관내 법관대회나 세미나를 하든지, 등산대회를 하든지 한바탕 축제를 열면 어떨까? 까짓 것 사법훈장도 하나씩 나눠 달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왕 새 세기를 맞이하는 김에, 무궁화 모양에 ‘법원’이라고만 쓰여 있는 무뚝뚝한 현재의 법원 상징을 산뜻하게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 기업마다 CI(Corporate Identity) 작업이 한창이고 일부 행정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마저 그런 작업으로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을 하고 있다. 우리 사법부도 이미지 변신을 한번 해봄이 어떨까? 사법부 고유의 로고나 휘장을 새로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인터넷 시대에 맞게 영문 표기와 인터넷주소를 함께 기재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법원공무원들에게는 법원의 상징이 새겨진 배지를 주어 달고 다니게 한다면, 법원종합청사에 출입할 때 우리는 거추장스럽게 법원공무원증을 댔다 달았다 하고 변호사나 법무사는 자기들 배지만 달랑 달고 출입하는 이상한 일은 사라질 것이다. 가끔 시골 법원이나 등기소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그 건물 전면에 빈말 같더라도 무언가 사법부를 상정하는 구호라도 몇 마디 써 붙여 놓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깃발만이 펄럭이는 황량하고 권위적인 공간을 그대로 두고 그 곳을 드나드는 국민들에게 어찌 편안한 마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새 세기 새 천년, 새 사법부를 기대해본다. <1999년 10월 1일자 법원회보> 2003년부터 <법의 날>은 5월 1일에서 4월 25일로 변경되었다. 4월 25일은 근대사법의 시발점인 1895년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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