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큰 大자 이야기

본의 아니게 앞에서 벌써 큰 大자가 두 번이나 나왔듯이, 대한민국 사람들은 유난히 큰 大자를 좋아한다. 큰 것에 대한 동경이나 일종의 신앙이 한처럼 스며들어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지금은 강소국(强小國)이 되어 가고 있지만, 수천 년을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온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개는 작은 것보다 큰 것이 좋겠지만, 큰 것만 너무 좋아해도 문제다. 신년 인사가 난데없이 ‘(큰) 부자 되세요’가 된 나라답게 온 세상이 벤처니 복권이니 한탕 식 대박을 꿈꾼다. 영화, 증시, 스포츠에서도 다들 대박을 노린다. 사실 그런 대박 소식이 종종 있다한들 대부분 소시민들은 20:80의 암운이 덮쳐오는 걸 속수무책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육두문자를 함부로 쏟아내는 공직후보자들의 험구가 빈축을 사고 있는데, 그렇게 품위와 금도(襟度)를 잃게 된 것은 그게 다 큰 大자 탓이다. 때로는 언어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대통령 직을 군주제나 지독한 독재 치하에서나 쓸 법한 대권(大權)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이 중소권(中小權)이 아닌 대권인 바에야 생사결단하고 제왕적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은 자명하다. 대통령의 비상대권과 평상시 대통령의 권한이 大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원래 큰 大자는 그것이 아닌 中, 小가 있거나 보통이 있을 때 붙이는 접두어이다. 법관과 대법관, 기자와 대기자, 스님과 큰스님, 소령과 대령, 소장과 대장, 초중등학교와 대학교, 중소기업과 대기업, 지방법원과 대법원, 지검과 대검, 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협, 성수교와 성수대교, 금․은․동상과 대상... 그러니, 대통령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부통령, 중통령, 소통령, 아니면 로마시대처럼 통령의 존재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엔 그런 보통통령이 없이 대통령만 있으니 보통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 현상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제 하에서 보통통령은 바로 행정각부의 장관들인데, 그들이 진정 이 시대의 보통통령이라는 자세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러한 현상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실력 있는 보통통령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소신껏 일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중만 살펴 일한다면 권력집중이나 친인척비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자식들을 위하여 부모들이 대세에 순응하여 큰 大자가 들어가는 동네의 학원가로 몰려가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고 大소란을 피웠는데, 사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식 대학 들여보내 큰 大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도록 대망하는 이 시대의 대치동 사람들이다. 대기업CEO, 대학교수, 대사, 대기자, 대장, 대통령, 대구광역시장, 大스타... 다 좋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리고 자식들 모두가 큰 大자 들어가는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각자 맡은 바 자기 분야에서 大家로서, 나아가 大人으로서 나름대로 쓸모 있는 대들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그 동안 쓴 목요일언 6개월을 결산하는 大尾로 삼는다. <2002년 6월 6일자 법률신문 목요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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