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관 검토보고서 사전열람제를 도입하자
형사소송법 제35조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소송계속 중 관계 서류’에 대한 열람·등사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162조는 ‘소송기록’의 열람·등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상고이유 쟁점이 복잡한 경우 대개는 재판연구관이 검토보고서 및 의견서(판결문초안)를 작성하여 대법관에게 보고하고 있다. 현재 재판연구관의 검토보고서는 대외비로 취급되고, 형사소송법의 ‘관계 서류’ 또는 민사소송법의 ‘소송기록’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운영되고 있다. 다만 재판연구관들이 검토 보고한 주요 사건에 대한 검토보고서 내용이 ‘대법원판례해설’이라는 책자를 통해 사실상 공개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사전열람제를 시행할 때가 되었다.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대법관의 합의 전에 미리 당사자에게 송부하여 이에 대해 당사자가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여 그 추가 의견을 최종 검토보고서에 반영하면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다. 사건을 보다 투명·공정하고 신중하게 심리하면 할수록 대법원 재판의 신뢰를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심인 대법원 사건은 법리적 쟁점이 많으므로 연구관이 혹시 놓친 쟁점을 당사자가 지적할 수도 있다.
행정부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국세기본법 제58조는 ‘청구에 관계되는 서류를 열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문에 근거하여 조세심판원은 훈령으로 2009년부터 조사관 사건조사서(심판관회의자료) 사전열람제를 시행하고 있다.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심판을 위해 심판청구 당사자에게 담당조사관의 사건조사서를 심판관회의 전에 미리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추가로 제시하는 의견 및 증빙을 사건조사서에 반영하여 청구사건을 심리함으로써 조세심판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하여 도입하였다. 구체적인 절차는 조세심판원 운영규정(조세심판원훈령)에 규정되어 있다.
사전열람 대상인 사건조사서에는, 형식적 기재 사항(청구번호, 청구인, 처분청, 세목 및 고지내역, 쟁점)만이 아니라, 처분의 개요, 청구인의 주장 및 처분청의 의견을 정리하고, 조사관의 조사내용 즉 관련법령, 사실관계, 선결정례 및 예규(대법원판결, 하급심판결, 조세심판선례, 국세청 예규 및 서면질의답변) 등이 모두 정리되어 있다.
사건 당사자는 조사관의 사건조사서를 사전에 열람하여 검토한 다음, 사건조사서에 당사자의 주장이 누락되었거나 불분명하게 기재된 경우, 미처 반박하지 못한 쟁점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사실관계가 누락되었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경우, 관련 판례와 선례의 기재에 오류가 있거나 누락이 있는 경우 또는 그 밖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항에 대해 추가 의견을 적극 개진함으로써 심판관회의에서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심사보고서 사전열람제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심사관의 심사보고서를 피심인에게 보내주어서 거기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고 그 후에 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진행한다.
이러한 제도 시행의 성과에 비추어본다면, 대법원도 대법원규칙을 제정하여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결론 부분은 물론 제외한다) 사전열람제를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개혁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되었다. 어떤 변호인이 형사소송법 제35조의 ‘관계 서류’에는 연구관 검토보고서도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열람·등사 청구를 하였을 때 대법원이 이를 불허하고 변호인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하면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하다.
(법률신문 2023년 9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