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19일 전원합의체에서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이 기업별노조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판결을 선고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교섭력 강화 차원에서 도입된 산별노조는 도입 초기의 순기능보다 정치투쟁 일변도의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제 다시 개별 노동자의 자율을 좀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노조가 정상화될 수 있게 되었다. 대법원이 산별노조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 판결을 내림으로써 차제에 산별노조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현재 노동개혁법안이 여·야의 극한 대립 때문에 입법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가로막혀 있는 예에서 보듯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의 정책 추진과 갈등 해결은 행정부는 물론이고 입법부가 나서서 정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대신 사법부가 이제 정책대결과 진영논리의 승부처이자 격전장으로 변했다. 새만금사업, 신행정수도, 4대강사업, 국사교과서, 간통제 폐지, 통상임금 등 국가의 중요 정책이 사법부에서 다루어진다. 분쟁해결의 장에서 법적인 전문성과 권위를 가진 사법부가 싫든 좋든 그런 사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 허용 문제를 해결한 것도 연방 대법원이고, 우리나라에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것도 헌법재판소다.
대한민국은 이른바 통치불능(ungovernability)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정책의 전환이 행정부·입법부에 의해 이루어지기는 너무 힘들게 되었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시대에 입법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있지만 문제해결능력은 부족하다. 정치가 갈등해소와 문제해결에 실패하는 위기의 시기일수록 그런 문제의 해결을 맡게 되는 사법부라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개개 쟁점에서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게다가 실기하지 않고 판결하여야 분쟁과 사회적 혼란을 적기에 수습할 수 있다. 제19대 국회에서 입법기능을 마비시킨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적기에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해관계의 조정과 분쟁 해결에서 사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법부 구성원들은 그만큼의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영한 신임 법원행정처장)
그리고 대법원은 보다 많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최고법원의 위상을 회복하고 정책법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쟁점에 대해 전원합의 심리가 더 늘어나야 한다. 전원합의체 선고건수 2014년 14건, 2015년 24건으로는 부족하다.
- 법률신문 2016년 2월 29일자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