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틀 밖의 상상력 – 모래방벽 ‘바레브 라인’ 돌파 작전
1973년 10월 6일, 이슬람의 라마단과 유대인의 속죄일이며 최대 명절인 욤 키푸르 기간에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이스라엘 군을 공격하는 기습적인 합동 작전을 벌인다. 과거 몇 번의 전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 이집트는 4차 중동전쟁에서 전술과 목표를 바꾸었다. 이스라엘 군대를 완전히 격멸하겠다는 이전까지의 전쟁 목표를 버리고, 수에즈 운하를 장악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당시 이스라엘 군은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모래방벽인 ‘바레브 라인’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이스라엘은 세 번의 중동전쟁으로 국제 여론도 좋지 않고 미국의 압력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레브 라인에 배치된 병력을 줄이고, 아랍군의 선제 공격을 허용한 뒤에 반격한다는 전략으로 바꿨다. 이집트 군대는 이 전략의 허점을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선제 공격에서 유리한 입장을 최대한 살려서 바레브 라인을 돌파한 후 국제 사회의 중재를 통해 전쟁을 중지하고 수에즈 운하를 장악한다는 목표를 세운 이집트 군은 바레브 라인에 대한 공격 전술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했다. 39미터 높이의 모래 방벽을 그냥 타고 넘으면 하루가 걸려 이스라엘 전차부대와 항공기의 반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이집트군은 동독에서 수입한 고압 살수차로 거대한 모래 방벽에 물을 뿌려 통로를 확보하고 공병 부대가 부교를 놓아 순식간에 대규모 병력을 도하시켜 이스라엘군의 허를 찔렀다. 2만 명 정도의 희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도하 작전에서 이집트군의 사망자는 단 200명뿐이었다. 이스라엘의 불패 신화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투기를 출동시켜 이집트 지상군에 폭격을 가하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이집트군에는 대비책이 있었다. 지난 3번의 전쟁에서 완벽을 자랑했던 이스라엘 전투기는 이집트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당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이집트의 지대공 미사일에 맥을 못추고 단 하루 만에 전체 공군기 290대 중 180대가 격추되고 말았다. 하늘에서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맥없이 격추당하는 동안, 땅에서는 이스라엘의 막강 탱크부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포탄에 맞아 폭발했다. 순식간에 이스라엘 2개 기갑여단이 전멸했다. 이집트군 탱크의 2배가 넘는 장거리 포격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탱크를 괴멸시킨 것은 2인 1조로 참호를 파고 매복해 있다가 탱크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공격하는 TOW라는 소련제 유선 유도식 대전차미사일이었다.
이집트군은 초기에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운하 동쪽으로 13킬로미터만 진격하고 멈추었다. 철저한 계획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지난 3번의 중동전쟁에서 참패한 이집트는 상대방의 약점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사막전에서 제공권과 기갑 전력이 절대적으로 열세임을 인정하고, 현실에 맞는 맞춤형 목표와 창의적 전술을 개발했다. 그 위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이스라엘이 핵 공격 카드를 고민할 정도로 3일 만에 수에즈 운하 주변에 배치된 이스라엘의 지상군과 공군 전투력이 소모되고 말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남은 병력을 총동원해서 이집트의 공세를 저지하고 가까스로 전쟁을 교착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10월 22일 유엔의 중재안이 발표되었다. 10월 24일 이스라엘이 다시 수에즈 운하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지만 미국과 소련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자 결국 10월 25일 휴전안이 발표되고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미중전쟁 중에 한국에게 뜻밖의 반전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간결한 목표와 상황에 따른 창조적 전술로 생존의 길을 열어야 한다.
- 최윤식, 『앞으로 5년 미중전쟁 시나리오』, 지식노마드, 2018., 430-4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