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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기다리며 - 김호기 칼럼

 <오늘날 민주주의를 최상의 정치체계로 수용하는 까닭은 자유와 평등, 평화와 번영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교과서인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민주주의 쇠퇴가 계속돼 왔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비자유주의(Illiberalism)와 포퓰리즘(Populism)은 팬덤·혐오·증오 정치로 진화했고, 정치 양극화(Polarization)는 정서 및 감정의 양극화까지 나아갔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위협 요소가 더해졌다. ‘리더십의 위기./ 리더십의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통찰한 이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직접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투표제적 원리에 기반하고 카리스마적 리더가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 민주주의. 베버는 규범적 마키아벨리즘의 시각에서 정치가의 비범한 능력을 중시했다. 정치 지도자란 악마적 수단을 갖고 천사적 대의를 구현하는 존재다. 여기서 악마적 수단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역설한 이는 경세가(經世家) 윤여준이다. 윤여준의 대통령의 자격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성쇠를 결정할 관건은 지도자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스테이트크래프트란 국가를 운영하는 리더의 실천적 능력이다. 구체적으로 헌법적 기본원리 등 국가제도의 유지, 국민적 일체감 형성과 통합 구현, 대내외 현안들에 대한 올바른 정책 수립과 실행, 그리고 다양한 정치세력 및 인물들의 관리 등을 지칭한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 현대사에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후발산업화와 후발민주화 국가였던 만큼 추격산업화와 추격민주화를 위한 1차적 조건의 하나는 정치 리더십이었다. 그 대표적인 리더십의 주인공은 박정희·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세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그늘이 존재했지만, 박정희 리더십은 경제성장의 성과를 일궈냈고, 김대중 리더십은 복지국가의 토대를 세웠으며, 노무현 리더십은 균형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 문제는 2020년대 현재 이들을 계승하는 발전적 리더십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란 본디 리더십과 제도가 상호작용하는 영역이다. 리더십을 일방적으로 부각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더의 능력이 국가발전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사자의 용맹여우의 지혜, 베버는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강조한 바 있다. 21세기적 버전으로 말하면, 그것은 행정역량과 정치역량이다. 행정역량이 정책을 섬세하게 디자인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능력이라면, 정치역량은 해당 사안들에 따른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정치 리더십은 적잖은 변화를 겪어 왔다. 산업화 시대에는 군인형 리더십, 민주화 시대 전반기에는 투사형 리더십, 후반기에는 CEO형 리더십법률가형 리더십이 국가를 이끌어 왔다. 안타까운 것은 이 리더십의 변화 과정에서 국민을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책략적 사고가 강화되는 동시에 정치 리더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내파되어 왔다는 점이다. 다시한번 말하면 리더십의 빈곤은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새로운 징표다./ 오늘날 정치 리더십이 놓인 시대적 환경은 과거와 다르다. 과학기술혁명의 무한한 혁신에 대응할 정책적 식견정보사회의 무정부적 원심력에 대응할 소통의 역량이 요구된다. 21세기 정치 리더는 기업가도, 법률가도, 투사도 아니다. 이 교훈을 우리 국민은 체험을 통해 익혀 왔다. 그 출신이 무엇이든 정치가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디지털 대전환에 맞서 성장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기 위해 어떤 국가전략을 추진하려는지에 대한 시대적 소양과 비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4·10총선 이후 미래 권력으로 향하는 정치적 시계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위기의 민주주의에서 번영의 민주주의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독일어 직업(Beruf)’에는 소명의 의미가 담겨 있다.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려는 리더를 기다리는 이, 결코 나만은 아닐 것이다.> (중앙일보 2024년 7일 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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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24-07-10

조회수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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