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파리장서> 운동
3·1운동 101주년이다.
고향예천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매달 <독립유공자 생활지원금>을 받고 있다.
1919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에 유림은 없었다.
137명의 유림 대표는 1919년 3월 파리 세계만국평화회의에 2,674자의 독립청원서를 보냈다.
이것이 <파리장서(長書)>다.
독립운동사에 획기적인 사건이다.
봉화에서 초안이 마련된 파리장서에는 경북에서만 62명이, 그 중 봉화에서 9명의 유림이 서명했다.
유림은 김창숙을 파리로 파견하고자 상해로 보냈으나 실패하고 이 문서를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송달했다.
춘번은 김창숙과 협의하여 경북 일대의 유림들과의 연락을 맡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바로 전 해 1960년에 돌아가셔서 나는 선생을 뵌 적은 없지만,
어릴 때 내가 외가에 가면 춘번의 맏딸인 나의 외할머니(권홍임여사)께서 어린 외손자(심관)에게 늘 친정아버지(춘번)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를 해주었다.
춘번 선생의 어록.
"만권의 서책을 읽지 않고 어찌 선비라 하겠는가."
최근 선생의 사진을 하나 찾았다.
작년에는 춘번의 친손자가 물어물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