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의 독재 (tyranny of the majority)
영국의 정치학자 어네스트 바커는 “다수결의 원칙은 양(量)과 질(質),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 “다수파의 의사는 그것이 다수의 의사이면서도 공정(公正)한 의사일 때에만 모든 사람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민주정치는 다수결이 원칙이지만 그 ‘다수’가 이치에 맞는 방법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수결원리는 사실 단순한 ‘수의 지배’가 아니라 자유로운 토의를 통한 ‘이성의 지배’라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만약 다수파가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결정해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말한 ‘다수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이다. 다수당이 표결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합리적인 토의과정을 요식행위처럼 무시해버린다면 그것은 바로 ‘다수의 횡포’이자 ‘다수의 폭력’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토의과정’ 없이 어떤 법률안이 다수파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통과되는 경우를 정치학자들은 ‘법적으로는 유효,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무효’라고 표현한다. 말하자면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죽어버렸다’라고 표현한다. 국회는 법대로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를 하는 곳이어야 한다. 21세기에 독재시절의 ‘통법부’를 다시 보게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이제 진영의 전당이 되어버렸다.
참고 : 어네스트 바커(안경환 역), <천년 역사를 품은 섬나라, 영국> (한울아카데미, 2024). 원저는 1942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