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했던 여름이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면 가을은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나그네의 시간이고 고독의 시간이며 외로움과 우수의 시절이다.
길 떠남의 시기이며 낙화의 시절이다.
욕망을 성취한다는 것은 곧 허무의 시작이다.
생의 완벽이 열매로 완성될 때 이제 침몰이 시작된다.
뜨거웠던 사랑의 연인들은 가을의 벤치에서 이별을 준비한다.
만남은 우연이지만 이별은 필연인 법.
이 가을에 ‘그리움’이 깊어가는 것은 곧 상대가 지금, 이곳에 ‘부재’하기 때문이다.
해서 가을 성묘에는 뭔가 따뜻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죽은 자’를 생각하게 되고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하게 된다.
모든 익은 것들은 떨어지게 되니 가을에 사람들은 겸허해지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격렬했던 여름에 품었던 감정들, 애욕과 질투, 조롱과 무시, 분노와 증오, 복수심과 절망. 격렬했던 감정들이 휘발되며 삶을 명상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가을에는 삶을 앓아도 좋겠다.
그리운 것들을 많이 그리워해도 죄가 될 것 같지 않다.
-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세계일보 2016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