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다. 120년 전인 1894년이 바로 갑오년이었다. 그 해 창업(創業) 500년이 지난 조선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통해 근대국가체제를 확립하려고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 불리는 개혁조치를 시도했다. 1895년에는 법률 제1호 재판소구성법을 제정하여 근대사법제도를 도입하였다. ‘기무’라는 용어는 ‘기무사령부’에 남아 있으나, ‘경장’(更張)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경장은 요즘 말로는 개혁이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당 태종이 신하들에게 창업과 수성(守成)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방현령은 창업이 어렵다고 하였으나, 위징은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답했다. 창업도 수성도 다 어렵지만,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 그러나 수성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경장(更張)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창업 후 수성과 경장의 길을 제대로 걸어야만 살아남는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은 40년에 불과하다. 한때 세계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했던 노키아는 2007년 7월 아이폰 등장 이후 몰락하여 마이크로 소프트(MS)에 매각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 유명한 모토롤라도 구글에 매각되었다. 1980-1990년대 세계를 주름잡았던 소니는 어떤가. 2011년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한 코닥을 보라. 영원한 일등은 없다. 몰락하는 기업의 공통점 제1단계는 ‘성공에 도취된 자만’이다(짐 콜린스). 성공은 필연적으로 자만을 낳고, 자만하는 자는 외부환경 변화에 둔감해지기 쉽다. 이것이 성공의 덫(success trap)이다. 성공의 덫에 걸리지 않고 끊임없는 갱신으로 경장해야 발전할 수 있다. 원래 현상유지는 강에서 떠내려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때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1위까지 올라갔다가 2008년부터 15위에 머물러 있다. 2007년 1인당 GDP 2만 달러를 돌파한 후 멈칫거리고 있다. 선진국들이 2만 달러 이후 3만 달러를 돌파하는 데 평균 8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2017년에 가서야 3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업환경보고서 2014’에 의하면 ‘계약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제도’ 부문에서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다. 전자소송과 우수한 인적 자원에 의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절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성장의 둔화, 실업의 증가, 소득분배의 악화, 저출산·고령화, 규제의 남발, 사회안전망의 미비 등의 장애물 앞에 직면해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갈등지수 세계 2위가 말해주듯이 ‘사회갈등’ 문제다. 사회갈등지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되면 GDP가 20%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가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사회갈등 해소에 앞장서는 것은 국부를 창출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법조계의 사회적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그럼에도 법조계가 도리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 속에서 사회갈등 해소와 분쟁 해결에 앞장서기 위해 경장을 거듭하는 새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법률신문 2013. 12. 19.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