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로 가는 길
사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했더라면

특허법원이 있는 대전은 이제 KTX를 타고 서울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변호사나 변리사를 비롯한 소송관계자들도 특허법원 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대전을 오가는 데 그리 불만은 없다. KTX로 왕복하면서 전개되는 차창 밖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차분히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허락받기에 특허법원 기일이 기다려진다는 분도 있다.
특허법원은 1998년 개원 당시에는 서울에 있었다. 1994년 7월 27일 공포된 개정 법원조직법과 ‘각급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허법원은 1998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개원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기억하기도 싫은 이른바 IMF 경제위기가 대한민국 호(號)를 침몰 직전까지 몰고 간 1997년, 그해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대전 출신 김칠환 국회의원 등이 주축이 되어 발의한 법률이 쉽게 통과되어 2000년 3월에는 대전으로 특허법원을 이전하게 되었다. 정말 ‘어 하는 사이에 애 밴 꼴’로 법률이 어물쩍 통과되었다. 특허법원은 태어나기도 전에 2년 후에 입양 갈 집이 미리 정해진 것이다. 대법원은 당시 특허법원의 대전 이전에 반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특허법원의 대전 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인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에 비하면 실패작은 아니다. 특허법원은 향후 특허침해소송에까지 아우르는 명실 공히 ‘지식재산법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신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를 보아 탄생한 참여정부 때 제정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도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반대 없이 쉽게 통과되었다. 몇 달 뒤인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불문의 관습헌법’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그 후 다시 여·야 합의 하에 제정된 것이 현재의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다.
이명박정부는 2009년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여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지금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의 장·차관이나 공무원들이 세종시와 서울을 불편하게 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과 국회가 서울에 있는 이상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세종시에 떨어져 있다는 것은 애당초 넌센스다.
2010년 세종시 원안 수정으로 정치권이 격돌했을 때, 타협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5대 헌법기관 중 3개의 헌법기관인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이전하는 대안을 마련했더라면 어땠을까? 헌법재판소법에는 헌재를 어디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대법원은 법원조직법상 서울에 두도록 되어 있으니 이것만 개정하면 된다. 거기다가 감사원, 대검찰청, 국세청, 경찰청, 국가인권위, 공정거래위, 국민권익위 등 사법·사정 관련 독립기관을 전부 이전하였으면 세종시는 경제과학도시 겸 사법수도가 될 수 있어 금상첨화였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최근 대법원에 제2기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격론이 예상되는 안건은 항소심 구조개편과 상고심 기능 강화 방안이다. 상고법원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만약 새로운 법원, 예컨대 상고법원, 노동법원, 회생법원, 문제해결법원을 만든다면 서울보다는 세종시에 두었으면 한다. (법률신문 2013. 9. 2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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