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법정기구로 된 후, 그리고 양 대법원장이 2011년 9월 취임한 후 첫 번째 대법관인사에서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의 후임에 정통엘리트법관인 김용덕 법원행정처 차장과 판사 출신 박보영 변호사를 임명 제청하였다. 출신대학, 출신지, 법조직역 및 성별에서의 다양성과 조직 안정성을 두루 만족시킨 절묘한 선택을 하였다는 점에서 인사의 감동과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만약 법원 내부에서만 발탁되었다면 국민의 지지와 호평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박보영 대법관의 경우 2004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서민과 애환을 함께 하며 재판을 받는 국민 입장에 서 보았던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최종심으로서 권리구제 기능을 담당하면서도 동시에 헌정체제에서 최고법원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정책법원 기능도 추구하여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지혜롭게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에 대법관은 고도의 재판실무능력을 갖춘 인사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법원의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도 마련되어야 한다.
대법원의 3개 재판부는 대법관 4명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으로 적어도 각 소부에 여성과 법원외부인사가 각 1명씩 이상은 충원되어야 균형이 맞는다.
그렇게 해야 각 재판부에서 활발한 합의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의견이 적극 개진되어, 사회적 중요 쟁점사안에 대한 전원합의체 심리가 대폭 확대됨으로써 대법원이 법치주의의 심화를 선도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대법관 내지 헌법재판관 인사가 법관의 승진 파라미드의 정점으로 기능하는 시대는 지났다. 인적 구성의 다양화라는 방향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인사에서 정통 엘리트법관 위주의 일률적 구성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다소 인위적이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직선거법이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비례대표후보자를 여성에게 50% 할당하고 있는 정신을 참고할 만하다.
양삼승 변호사는 대한변협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일정 직급 또는 경력 이상의 법관 또는 변호사들 중에서 헌법문제나 국가․사회의 정책적인 문제에 대하여 깊은 고민과 사색을 해온 법관 또는 변호사 등을 발굴․추출하여 대법원의 법관으로 등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분이 대법원장·대법관이 되어야 할까 하는 문제다.
그 동안 다행히 대법원장은 법원 내․외부나 언론에서 모두 훌륭한 인품과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분이 임명되어 왔다.
대법원장은 법관으로서의 용기와 소신, 인권의식, 정의감,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 소통능력, 사법행정능력 등의 덕목을 두루 갖추어야 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대법원장은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장은 우리나라 헌정체제 안에서 사법부가 공동체적 정의(正義)의 중심이 되게 하고 법원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 동안 사법부가 사법권의 독립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공동체의 중심이 아니라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법원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심화 과정에서 판결이 공동체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법원의 권위가 바로 서게 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사법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은 3부의 하나인 사법부의 최고지도자로서 정치력도 갖추어야 한다. 한편 법조계를 대표할 만한 어른으로서 존경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 헌법재판관 3인 추천권, 법관 임명 및 보직권 등 비교법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제왕적 권한’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행사하고 그 권한을 분산할 것인지에 대한 개선 방안도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대법원장은 ‘한번 법관이면 영원한 법관’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평생법관제를 정착시킬 의지가 있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이루려면 대법장이나 대법관은 국민과 더 가까운 곳에서 활동한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정착시킨 공판중심주의나 구술변론 확대도 사실 그의 변호사 경력이 없었으면 추진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고 법원 외부의 하소연에 대해 귀를 열어놓고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분, 그러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과 의구심에 대해 냉철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대법원장으로서 어려운 책무를 다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는 분이 대법원장이 되어야 한다.
대법관이 되어야 할 분도 당연히 법관으로서의 덕목을 두루 갖추어야 할 것이지만, 상고심 제도 개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의 대법원 시스템 하에서는, 무엇보다도 재판능력이 탁월하여야 한다.
재판능력은 단순한 사건처리능력과는 다르다. 대법관은 적어도 재판연구관을 압도할 수 있는 지혜와 실력과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지역별, 성별, 출신학교별, 세대별 안배나 재산관계도 고려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보다는 재판능력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상론으로는 정책법원을 지향하고 있지만, 국가의 향방을 좌지우지하거나 국민의 삶을 뒤흔들 만한 그러한 사건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사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륜과 지혜와 식견까지 두루 갖춘 분이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국민들이나 재야법조계 및 검찰에서는 대법원이 구체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정확한 법리 판단을 하여 항소심 재판을 바로잡아주는 최종심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최종심 법관으로서의 재판능력 내지 법해석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고심 사건은 하나하나가 당사자에게는 더 없이 중요하기에 국민들은 대법관 숫자를 대폭 늘려서라도 제대로 된 상고심 재판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예컨대, 상고이유 주장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소정의 심리속행사유에 해당함이 법조문상 명백한 사건에 대해 위 법률조항을 무시하고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간단히 처리해버리는 대법관은 사건처리능력은 탁월할지언정 재판능력이 탁월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법원이 사건 폭주를 이유로 상고심의 하급심 견제 기능에 소홀하고 항소심 판결을 쉽게 통과시키게 되면, 항소심법원은 자의적인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하게 되기 쉽고, 강제조정결정에 이의하였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판결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법원 외부의 하소연에 대해 귀를 열어놓고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분, 그러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과 의구심에 대해 냉철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대법관으로서 그 어려운 책무를 다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는 분이 대법관이 되어야 한다.
2011년 7월 18일 개정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법정기구화 하였는데,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도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헌법재판관에 걸맞은 전문성과 재판 역량 및 인품을 갖춘 적임자를 찾아내어 재판관에 임명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은 입법·사법·행정부 3부(府)에서 3명씩 선출·지명·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선정 과정이 아직은 대법관에 비하여 너무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어 이제는 이 부분도 개선하여야 한다.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선정권한이 있는 사람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해지거나 현직 법관 위주로 선정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의 예와 같이, 정식으로 입법화 되기 전이라도, 3부의 규칙이나 시행령을 통해 각각 ‘헌법재판관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널리 인재를 발탁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개정 법원조직법 제41조의2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법정되기 전에 대법원규칙으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운영한 전례가 참고가 될 수 있다. 2012년 9월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절차 때부터 대법원과 국회에 각각 헌법재판관후보추천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여 3배수의 재판관후보를 추천하도록 하고, 대법원장과 국회가 그 중에서 재판관후보를 지명·선출하여야 하는 절차가 이제는 필요하다. 그 후 운영을 보아가며 아예 헌법재판소법에 명문규정을 두어 3부에 각각 재판관후보추천위원회를 두도록 입법화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1년 6월 대법원장 적임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다. 나는 손지열 전 대법관(변호사)을 추천하였다.
손지열 전 대법관은 위와 같은 덕목을 두루 갖추었고, 법원 내외의 신망이 두터우며, 대법원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품, 법조경력, 재판능력, 사법행정능력, 사법개혁의지, 시대정신, 균형감각 등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적임자라고 생각하여 추천하였다. 2006년 7월 11일 대법관을 퇴임한 후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고, 7개월 후 로펌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여 오히려 전관예우로부터 자유로운 행보를 보였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대한변협은 2011년 7월 21일 제15대 대법원장 후보로 고현철 전 대법관(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김용담 전 대법관(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손지열 전 대법관(김앤장 변호사), 양승태 전 대법관, 우창록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를 추천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은 양승태 전 대법관을 지명하였다. 나는 서울고등법원에서 고현철 전 대법관을, 대법원에서 손지열, 김용담 전 대법관을 모신 바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당초 대한변협 사법평가위원회에서는 손지열, 고현철, 이홍훈 전 대법관을 추천했는데, 이홍훈 전 대법관이 빠지고 김용담, 양승태 전 대법관과 우창록 변호사가 들어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4개 로펌에 골고루 돌아간 셈이다. 신영무 협회장이 재야에서는 우창록 변호사를 추천했고 우 변호사가 일찍 변호사 개업을 해서 로펌을 창립한 변호사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홍훈 전 대법관의 퇴임사는 읽어볼수록 감동적이다.
“(법관으로서) 어떤 한 인생이 던지는 절박한 호소 앞에서 법이 진정 추구하는 바에 다가가고자 노력했으며, 우리 사회의 굴곡진 역사과정의 한 가운데서 의미 있는 변화와 함께 하고자 했다.”
오늘의 소수의견, 내일의 다수의견
어제의 소수의견이 오늘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 하여야 하는 이유, 소수의견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해안 바닷가를 관할하는 조그만 법원에서 형사단독판사로 근무하던 1993년의 일이다.
맡은 사건의 죄명은 ‘수산자원보호령 위반’이고,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관할관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고 3중 자망어구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본 적이 없는 사건이라 궁금하기도 하여 하나하나 검토하여 보았다.
죄명부터가 이상했다. 무슨 포고령이나 긴급조치 위반도 아니고, 죄명이 ‘수산자원보호령 위반’으로 되어 있는 것부터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형법정주의 하에서 대통령령 위반죄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수산업법 관련조항은,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다.”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대통령령에는 필요한 벌칙을 둘 수 있다.” “제2항의 벌칙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의 규정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범죄구성요건 해당 여부나 처벌 여부를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한 것이다.
나는 수산자원보호령의 모법인 수산업법 제52조 제2항, 제79조 제2항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여 직권으로 위헌제청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을 하였다(1994. 6. 30. 선고 93헌가15,16,17 결정).
“국회의 기술적·전문적 능력과 아울러 시간적 적응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형벌의 종류와 그 범위는 확실히 정하여져 있고 범죄의 대상이 되는 행위도 그 대강은 국민이 예측할 수 있도록 수권법률에 구체적으로 정하여져 있다고 볼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나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할 것으로 확신하고, 위헌제청신청이 없었음에도 직권으로 자신만만하게 위헌제청을 하였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 나와 같이 위헌론에 선 재판관이 1명도 없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9 대 0이라니.
나의 헌법해석능력과 판단력에 대해 의문을 품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사실 단독판사로서 처음 위헌제청결정을 한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무참히 기각되자, 앞길이 창창한 청년법관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상당히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은 흘러 16년이 지난 후인 2010년 9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내가 받은 1994년의 합헌결정을 폐기하였다(2010. 9. 30. 선고 2009헌바2 결정). 이번에는 반대로 6 대 3이다. 나의 견해가 17년 만에 다수의견이 된 셈이다.
어제의 소수의견이 오늘의 다수의견이 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의견, 나의 의견이 이제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된 것이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인정되어 나로서는 명예회복이 된 셈이다.
그러나 몇 가지 개운치 않은 생각은 남는다.
2010년 위헌결정을 보면, 사건명이 ‘헌바’이고, ‘국선대리인’이 선임되어 있다. 법원이 1994년 합헌결정을 원용하여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하였다는 것, 그래서 남해안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일개 어부 피고인이 변호사도 없이 직접 헌법소원을 하였다는 것, 그리고 2009년 4월 22일 법률 제9627호로 「수산자원관리법」이 제정된 후에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하였다는 것.
나는 후배변호사들에게 법률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강조한다.
“어제의 소수의견,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 판례를 묵수·추종할 것이 아니라 납득이 되지 않으면 판례 변경을 주장해야 한다. 헌법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소액사건심판법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민문기 대법관이 소수의견을 개진하면서 판결문에 적은 유명한 문장이 있다.
“한 마리 제비로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한변협신문 2012년 11월 26일>